수수료 전쟁: "뭉치면 도매가, 흩어지면 소매가"[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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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지점장님, 제 퇴직연금 수익률은 낮은데 펀드 보수와 각종 관리 비용까지 빠져나간다는 게 맞는 건가요?” “고객님, 저희도 죄송합니다만… 펀드 보수는 상품 운용 비용이고, 계좌 관리와 기록 유지에도 별도의 비용이 듭니다. 정해진 구조라 창구에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자주 벌어지는, 서로가 난처한 상황입니다. 사실 창구 직원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들은 본사가 정해준 룰대로 업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계좌를 유지하고, 기록을 관리하고, 상품을 라인업하는 데는 분명 인프라 비용이 듭니다. 또한 한국 퇴직연금에서 운용관리수수료와 자산관리수수료는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부담하고, 펀드 보수 같은 자산운용 관련 비용은 적립금에서 차감됩니다. 그러니 문제를 “가입자가 수수료를 낸다, 안 낸다”라는 단순한 말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비용이 어떤 구조에서 결정되는가입니다. 같은 돈을 굴리더라도 흩어진 개인이 사는 가격과 거대한 기금이 협상하는 가격은 다릅니다. 한국의 근로자들은 계약형 구조와 낮은 협상력 때문에, 장기 노후자산을 굴리면서도 소매 시장의 가격 구조에 갇히기 쉽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전 세계 금융 수수료의 역사를 바꾼 1975년의 뉴욕으로 가봐야 합니다. 1975년 5월 1일, 월가의 ‘메이 데이’ 1975년 이전까지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식 거래 수수료는 ‘고정 가격’이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가 정해놓은 요율표가 있었고, 고객은 가격을 협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금융 서비스에도 사실상 정해진 가격표가 존재했던 셈입니다. 하지만 1975년 5월 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고정 수수료 체계를 깨고 경쟁 수수료의 문을 엽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날을 노동절에 빗대어 금융의 ‘메이 데이(May Day,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고정 거래 수수료를 폐지하고 금융기관 간 수수료 자율 경쟁을 도입한 사건)’라고 부릅니다. 이 조치로 시장에는 협상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는 극명했습니다. 거대한 자금을 굴리는 연기금과 기관 투자자들은 증권사를 상대로 막강한 협상력을 발휘했습니다. “우리는 한 번에 큰 금액을 거래한다. 수수료를 깎아주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 증권사들은 큰손을 잡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고 서비스를 나누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에도 ‘도매가’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반면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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