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지모군(16)은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후쿠야마형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맞벌이 직장생활을 하는 지군의 부모님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 받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을 때마다 연차를 내고 하루 일정을 비워야 했다.
2023년 서울대병원이 KB헬스케어와 함께 비대면 플랫폼 ‘올라케어’를 활용해 희귀질환자 진료 시스템을 구축한 뒤 지군과 부모님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대면 앱으로 의사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어 낮 시간 부모님이 회사에 출근해도 집에서 활동 보조사의 도움으로 진료 받을 수 있게 됐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에서 2023년 도입한 중증환자 대상 비대면 진료가 국내 비대면 진료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희귀질환자들은 중증인 경우가 많아 그동안 보호자만 병원에 와 약을 타는 경우가 있었는데 비대면 진료를 통해 직접 환자를 볼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에선 경증, 만성질환자 중심 비대면 진료에 서비스 개발이 집중됐다.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엄격하게 금지되던 과거엔 의료법 상 제약이 크지 않은 만성질환자 대상 모니터링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성장했다.
여기에 중증 질환자 대상 비대면 진료가 의료계 반대에 막히자 감기 등 가벼운 감염병이나 피부질환 등 경증 환자 대상 서비스가 크게 늘었다. 비대면 진료는 ‘만성질환자’, ‘경증 환자’ 중심이란 인식이 굳어진 배경이다.
이런 비대면 진료 서비스는 많은 사람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하는 데엔 도움이 되지만 실제 환자 치료 이점을 확인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진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비대면 진료를 통해 혜택을 줄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힘들어서다.
일각에선 ‘편리하고 간편한’ 비대면 진료 탓에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될 환자까지 불필요한 진료를 받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면 진료가 병원 문턱을 지나치게 낮춰 의료 남용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와 KB헬스케어가 함께 도입한 비대면 진료 모델은 달랐다. 거동이 힘든 중증질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희소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경기도에 사는 이모양(8)은 지난해 7월부터 14차례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았지만 한두차례 검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진료를 비대면으로 받았다.
이양의 보호자는 “병원을 찾을 때면 오랜 이동과 대기시간 탓에 상태가 악화되는 일이 많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며 “비대면 진료로 아이의 피로도가 크게 줄어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걸림돌은 많다. ‘중증 환자 대상 비대면 진료는 위험하다’는 막연한 오해가 그 중 하나다. 대형 대학병원의 비대면 진료는 동네의원과 달리 진료비(수가)를 높여 받을 수 없는 것도 한계다.
대학병원 의사들이 평소에 돌보던 희소질환자를 비대면 진료로 계속 보살피려면 휴일이나 야간 시간에도 ‘콜 당직’과 같은 상황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네의원에만 돈을 더 주는 비대면 진료 수가 체계에선 이를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장)는 “비대면 진료는 경증보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중증 위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학병원은 비대면진료를 하면 대면진료보다 수가가 낮아지는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