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섭 이대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손가락 절단 박해일 씨
정비中 오토바이체인에 엄지 껴… 늦어도 12시간 내 해야 성공률↑
이후 거머리치료와 항응고제 복용… 6주째 핀 뽑고 재활치료에 들어가
박 씨 “큰 불편 없이 정비 일 계속”
손가락 한두 개 없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해진다.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절단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면 신체 접합과 회복이 가능하다. 오토바이 정비사 박해일 씨(36)가 그랬다.
● 아차 하는 순간 손가락 끼어
박 씨는 오랫동안 오토바이 정비 일을 해 왔다. 정비 일을 마치면 택배 아르바이트도 했다. 몸이 힘들기는 했지만 가장으로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되도록 오토바이 정비를 빨리 끝내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5년 전이었다. 아는 형이 오토바이 정비하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로소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경각심은 반짝 생겼다가 곧 사라졌다.
그해 4월, 결국 오토바이를 점검할 때 사고가 터졌다. 엔진의 힘을 전달하는 체인을 들여다볼 때였다. 체인이 돌아가기 때문에 시동을 끈 상태로 정비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빨리 끝내려는 마음도 들었다. 시동을 켠 채 체인에 손을 댔다.
주의를 덜 기울여서도, 한낮이라 졸려서도 아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왼손 엄지손가락이 체인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황스러웠다. 손가락을 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팔에 힘을 줘 빼냈다. 하지만 ‘뚝’하는 느낌도 함께 전해졌다. 엄지손가락 첫 번째 마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박 씨는 “자잘한 사고 한 번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큰 사고를 맞닥뜨리니 멍해졌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떡해야 할까,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일을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맴돌았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단 부위를 수건으로 감싼 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 구조 대원은 잘린 손가락을 잘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박 씨는 잘린 손가락을 깨끗이 씻고 응급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응급차량은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의료진은 절단된 손가락이 마르지 않도록 젖은 거즈로 덮고 비닐봉지에 넣은 뒤 얼음물에 담가 보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때였다. 수술하기 전에 먼저 코로나19 음성이 확인돼야 수술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수술은 김지섭 정형외과 교수가 맡았다.● 4시간 응급 접합 수술
손가락 접합 수술은 가급적 신속하게 해야 한다. 그럴수록 결과도 좋다. 박 씨는 오후 7시에 수술대에 올랐다. 손가락이 절단되고 약 5시간 지난 시점이었다. 김 교수는 “절단 사고의 경우 6시간 이내에 수술해야 성공률이 높다. 늦어도 12시간 이내에 수술해야 성공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빠르게 수술에 들어간 사례라는 것.
김 교수는 “절단된 부위에 혈관과 신경이 살아 있다면 대체로 접합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절단 부위가 매끈하지 않으면 그만큼 수술이 어려워지고 시간도 길어진다. 박 씨의 경우 뜯어진 것처럼 손가락이 잘려져 있어 고난도 수술이 예상됐다.
전신 마취를 한 뒤 가장 먼저 뼈를 맞춰 금속 핀으로 고정했다. 이어 혈관, 신경, 피부 순으로 접합 수술을 했다. 해당 부위를 제대로 보기 위해 15배 정도 확대한 미세 현미경을 사용했다. 상처 부위를 꿰매는 실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것을 썼다.
수술을 끝내기까지 4시간 정도 소요됐다. 혈관을 이어 주는 데 절반 이상이 걸렸다. 혈관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수술이 끝나도 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지손가락은 전체 손가락 중 가장 많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박 씨는 아직 30대 초반이었고, 손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생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때문에 혈관 접합에 특히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손가락 접합 수술 성공률은 일반적으로 80∼90%로 알려져 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거머리 치료로 혈류 살려
손가락 접합 수술은 잘 끝났지만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박 씨는 2주 동안 입원해 후속 치료를 받았다. 혈관과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이른바 ‘거머리 치료’를 1주일 동안 받았다. 김 교수는 “수술 직후에는 수술 부위에서 피가 흘러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관이 막혔다는 뜻이다. 동맥에서 정맥으로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르도록 돕기 위한 방법이 바로 거머리 치료”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거머리를 활용한다. 거머리를 수술한 부위에 붙이면 피를 빨아 먹는다. 어느 정도 피를 빨면 저절로 떨어진다. 그러면 다른 거머리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10마리 정도의 거머리를 썼다. 박 씨는 “처음에는 솔직히 거머리가 징그러웠다. 그런데 그 거머리가 내 손가락을 살려 준다고 생각하니 나중에는 귀엽게 보이더라”라고 했다.
피가 굳어 버려 흐르지 않는 현상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도 복용했다. 김 교수는 수시로 박 씨를 찾아 접합 부위 상태를 확인했다. 2주째 되던 날, 입원 상태에서 추가할 조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박 씨는 퇴원했다.
3주째 되던 날 실밥을 뽑았다. 뼈를 고정하기 위해 삽입했던 금속 핀은 6주째에 제거했다. 사실상 치료의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다. 엄지손가락은 조금 작아져 있었다. 잘린 부위를 원래 손가락에 붙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 원칙 지키는 삶 새로 배워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엄지손가락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느냐였다. 박 씨는 퇴원한 후에도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손가락 상태를 점검했다. 금속 핀을 뽑고 난 후 이른바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재활 치료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김 교수는 “따로 재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박 씨 엄지손가락 마디 부분을 꺾고 비틀었다. 박 씨는 “꽤 아팠다. 솔직히 겁이 나서 엄지손가락을 잘 움직이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많은 환자가 수술 후 겁을 내며 움찔한다. 하지만 과감하게 써야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그 후 박 씨는 틈날 때마다 엄지손가락 마디를 꺾고, 뜨거운 물에 담갔다. 처음에는 통증이 있었지만 점차 잦아들었다.
일단 엄지손가락을 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단다. 물론 처음에는 물건을 집으려고 해도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감각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통증도 오래 지속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정상으로 회복됐다. 오토바이 정비 기사로 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손가락 끝 감각이 미세하게 둔해질 때가 있다.
사고 후에도 박 씨는 오토바이 정비 일을 즐기고 있다. 다만 일하는 방법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박 씨는 “사람들이 왜 규칙을 지키라고 하는지, 사고를 겪은 후 알게 됐다. 이제는 원칙을 반드시 지키려고 한다. 원칙을 지킬 때 오히려 더 일이 빨리 끝나고 뒷맛도 개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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