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본격화…실효성 확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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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는 금융기관의 ‘당연한 책무’를 제도화했지만, 국내에서는 형식적 운영에 머물며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개정과 입법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행 점검의 실질화와 국민연금 역할 강화, 장기성과 중심 보상체계 등이 제도 정착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한경ESG] 이슈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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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기관들이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믿음을 무너뜨렸다.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은 단기 성과급에 매몰되어 고객의 자산을 부실한 부동산 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과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결국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고객의 손실과 막대한 사회적 피해로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수탁자책임원칙, 즉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code)다. 금융기관은 고객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는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금융기관들이 수탁자로서 지켜야 할 몇 가지 당연한 행동 원칙을 제시한다. 즉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한 명확한 정책의 수립과 공개, 이해상충 방지 방안 이행, 의결권 행사 정책과 결과의 보고,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을 바탕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주주활동 등 기본적인 행동 원칙이 담겨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일본·캐나다 등 20여 국가로 확산됐고, 우리나라도 2016 년 도입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2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이행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내실이 빈약한 ‘종이 위의 규범’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행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이를 연기금의 위탁운용사 선정 시 가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가점을 받기 위해 ‘가입’만 하고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제 목적인 적극적 주주활동은 등한시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개정안과 국회 입법 논의

정부는 지난 2025년 12월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질적 이행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를 설치해 이행점검 시스템을 구축하고, 2026년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전체 참여기관에 대해 보고서의 질적 수준을 등급화해 공시할 예정이다.

이어 주주 관여 활동의 성과를 운용역의 핵심성과지표(KPI) 및 보상 체계와 연동하도록 권고하고, 수탁자 책임의 범위를 기존 지배구조(G)에서 환경(E)과 사회(S) 이슈로, 대상 자산은 채권 및 해외 자산까지 확대하는 전면 개정을 추진한다.

아울러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 소통이 ‘경영권 영향 목적’ 공시 의무 등에 저촉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 기관투자자의 실질적인 주주권 행사 여건을 개선할 방침이다.

국회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위한 법안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남근 의원은 지난 2월 12일,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여부를 직접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시하도록 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연성 규범이었던 수탁자 책임 이행에 대한 법적 감독 권한을 강화하고자 했다.

정부의 발표대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이 상반기까지 이루어질 경우, 자산운용사의 주주 관여 활동이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 기준에 위탁 자산운용사 관리가 포함됨에 따라,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거나 운용하고자 하는 자산운용사들은 당장 올 하반기부터 주주 관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투자 대상인 기업의 경영 방향에도 실질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수탁자 책임 범위가 환경과 사회로 확대됨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이나 산업안전·노동·인권 등의 리스크에 대해서도 기관투자자의 상시적인 모니터링과 서신이나 비공개 대화 요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위한 조건은

이번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는 ‘착한 투자’를 도덕적 규범이나 특정 정치 진영의 전유물로 보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투자 대상 기업의 잠재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수익률을 극대화해야 하는 금융기관의 기본 책무이자 고객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당연한 수단임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금융기관이 본연의 책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민간 자율에 맡긴 채 이행 점검 절차 없이 출발한 것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라도 이행 점검을 도입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하지만 이행 감독이 ‘서신 발송 건수’나 ‘의결권 반대 비율’과 같은 피상적 수치에만 매몰된다면, 또다시 실질적 효과는 없는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늪에 빠져들 수 있다. 의결권에 대한 단순한 찬반 여부를 넘어 ‘조건부 찬성’이나 ‘수정 제안’과 같은 정교한 주주활동이 실질적인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세밀한 제도적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 이행을 기금 평가, 내부 운용역 평가, 위탁운용사 선정 및 이행 평가와 위탁운용사 내부 펀드매니저 전반의 성과-보상체계에 반영하여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보상체계가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 성과에 연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단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한 실효성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이행은 요원해진다.

지속가능성 공시의 조속한 도입도 필수적이다. 주주 관여 활동의 목적은 잘못한 기업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대상 기업의 리스크를 사전에 발견하고 개선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ESG 리스크 관리 체계·전략·목표 등과 선행 지표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또 금융기관이 다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 요구와 같은 지극히 소극적인 주주활동은 ‘경영참여 목적’이나 ‘일반 투자’가 아닌 ‘단순 투자’로 분류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자본시장은 해외 투자자의 눈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 오명에서 수십 년째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선진화를 향한 크고 작은 제도적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이 그 흐름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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