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스포츠 인권이란 단순히 폭력이나 성희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넘어 모든 체육인이 공정하고 차별 없는 환경에서, 자율성과 존엄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체육계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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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은 최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센터 집무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스포츠분야의 인권은 과거보다 개선됐고 꾸준한 자정 작용도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며, 이같이 밝혔다.
센터는 체육계 인권 침해와 비리로부터 체육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선수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20년 8월 출범했다. 현재까지 2800여 건의 사건을 접수됐으며, 사건 처리율은 약 84%에 달한다. 횡령·배임, 입시 비리, 승부조작, 성희롱, 성폭력, 따돌림 등 다양한 사건들이 센터에 신고되고 있다.
한국 아티스틱 스위밍 1세대 선수 출신으로 지난해 1월 취임한 박 이사장은 “센터가 사건을 조사·처리하는 것 외에 피해자 지원 및 보호,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예방 교육 등 통합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다”며 “체육인이 정말로 원하는 도움을 주고 체육 현장의 신뢰받는 보호자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사장 취임한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외부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더 막중하고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체육계 인권침해, 비리 사건에 대한 신고 접수· 조사와 더불어 법정 의무 교육, 인권보호관, 피해자 지원, 체육인 실태조사 등 다양한 예방 사업을 수행한다. 이제는 체육인을 보호하고 감싸 안아주는 기관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 속에서도 직원들이 열정과 사명감으로 매 순간 고군분투하고 있다.
-센터 출범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고,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도 컸는데.
△부임할 당시에도 부족한 인원과 예산으로 센터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체육인들에게 생소한 기관이었고, 역할이나 자격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전문 인력 충원을 통해 센터의 역량을 보강하고, 조사관들이 체육인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사 과정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려 애쓰고 있고, 조사관들이 항상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별사법경찰관 제도가 도입된다면 조사관들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지고, 체육인들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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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스포츠 인권 환경이 개선됐다고 보나.
△스포츠 인권은 과거보다 나아졌으며 꾸준한 자정 작용도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여전히 많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스포츠 현장이나 체육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오히려 체육계가 발 빠르게 인식하고 한발 앞서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스포츠윤리센터의 권한이 크게 강화됐는데.
△핵심은 실효성 강화다. 그간 센터의 징계 요구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거나 징계 요구 자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오는 8월 1일부터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각 단체가 센터의 징계 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2년 범위 내에서 재정 지원을 제한하고, 재조치 요구권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이 센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공감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포츠 거버넌스(관리체계)의 윤리성과 공정성 강화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체육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각 체육단체들이 지닌 문제점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체육단체 특성상 해당 종목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체육계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체육인들이 많다. 내부 비리나 불공정 관행을 신고하지 못하고 취하하는 이유를 고민하다가, 체육단체 운영의 공정성과 윤리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접수되는 사건들이 궁금하다.
△신고 사건은 매년 증가세다. 지난해에는 851건이 접수돼 1년 전(630건)보다 30% 이상 늘었다. 올해는 5월 기준으로 400건 이상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 건수가 늘었다고 체육계 인권침해와 비리가 더 증가했다고 봐선 안 된다. 누구든 스포츠윤리센터로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센터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서 신고 접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건 유형으로 보면 조직 사유화, 횡령 및 배임, 입시 비리, 승부조작 등 비리 사건이 약 57%, 성희롱, 성폭력, 괴롭힘, 따돌림 등 인권침해가 약 43% 정도다. 주목할 부분은 최근 들어 물리적 폭력 대신 언어폭력 사례가 늘었다는 점이다. 보다 세심한 인권 감수성이 요구되고 있다는 신호다.
-앞으로의 목표는?
△스포츠윤리센터가 스포츠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작점이 되고 싶다. 체육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은 직접 사건을 지휘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사관들이 소신껏 공정하게 조사하며, 심의위원회의 판단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다. 변화와 혁신이 결코 쉽지 않지만, 체육인들과 함께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 이사장은…△1970년 출생 △이화여대 체육학 학사 △연세대 정치외교학 석사 △한체대 체육학 박사 △아티스틱 스위밍 국가대표 상비군 △세계수영연맹 아티스틱 스위밍 국제심판 △대한수영연맹 부회장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 △서울특별시 체육진흥협의회 위원 △서울특별시체육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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