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시를 읽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데 한국은 세계 도서 시장 중에서 드물게 시가 살아 있는 나라다. 특히 20대 독자가 지난해 대비 5.2%가 늘어났다는 소식은 반갑다. 이것이 ‘뉴트로’와 ‘텍스트힙’ 현상으로 분석된다는 점은 익숙하면서도 늘 새롭다. 가끔 지하철에서 진은영이나 김소연 시집을 든 사람을 만나면 기쁜 마음에 흘금흘금 쳐다보곤 했다.
시란 무엇일까.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노래 중에는 정말 「시란 말이야」라는 곡이 있다. 어느 시인이 “시란 말이야” 하고 운을 떼어 좌중의 주목을 받고는 “그런 게 있지” 하고 능청스럽게 건배를 하는 장면이 리듬을 타고 전해진다. 몇 번을 들어도 웃음이 나는데, 정말 그렇게 말하는 시인이 머릿속에 여럿 떠올라서다.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각자에게 시란 무엇이라는 생각이 있을 터다. 그것이 광화문 교보문고의 현판이든, 지하철 스크린도어든, 어린 시절 문제집에서 풀던 시이든.
‘힙한’ 느낌의 시가 꼭 젊은 창작자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98년생 유선혜의 시집을 펼쳐도, 55년생 김혜순 시집을 들어도 멋짐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렇지만 오늘은 가을로 접어드는 오늘은, 찬바람 속에서 돌바닥에 넘어진 날에 당신을 일으켜줄 시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어쩌면 이 언니야말로 수많은 절망 속에서 절창을 찾아낸 힙을 가진 게 아닐까 생각해보며.
절망만 한 절정이 어디 있으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희망이 완창이다
―「완창」 전문
40년생 천양희 시인은 우리 시단의 어른이다. 세상 사는 일이 단추처럼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단추를 채우면서」나 당신에게 쓴 마음이 일생이 되었다는 「너에게 쓴다」 등의 시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인데, 운 좋게도 나는 그의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를 편집한 적이 있다.
가끔씩 붓펜으로 정성껏 쓴 편지들을 보내주셔서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가끔 삶이 고되고 외롭게 느껴질 때면 꺼내 읽어보곤 한다. 작업 과정에서 천양희 시인과 나눈 옛이야기들이 아직도 종종 떠오를 때가 있는데, 예전에 그의 삶이 절망으로 치닫던 순간 바닷가에서 보낸 하룻밤 이야기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배신감과 분노 끝에 가닿은 무기력 속에서 완전히 포기한 마음으로 해변에 모로 누워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바다가 세로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했다. 세상도 보기에 따라 천지가 뒤바뀌는 듯한데 다시 일어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힘을 내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시에 매진한 반백 년을 살아냈다는 그런 이야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 전문
『너에게 쓴다』는 천양희 시인의 짧은 시들이 모여 어느 페이지나 열어 읽어도 좋다. 고통 속에서도 시를 향한 열정만은 영원히 잃지 않는 에너지가 넘실댄다. 여전히 젊은 날의 삶은 밝은 날보단 어두운 날이, 따뜻한 날보단 추운 날이 많지만, 가파른 삶의 언덕도 천양희 시인의 짧은 시편들과 함께 힘 받고 넘어갈 수 있을 당신에게 이 글을 써본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

1 da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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