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스플리트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동쪽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내해(內海)다.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처럼 보인다.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이 번성하고,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무역로가 되었던 문명의 교차로.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킹스랜딩의 촬영지, 로마 황제가 슬기로운 은퇴생활 장소로 택했던 달마시아(Dalmatia) 해안도시로 떠나보았다.● 킹스랜딩이 눈 앞에
크로아티아 남부 달마시아 지역에는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같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에도 번성했던 유서깊은 해안도시들이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점박이 개 품종인 ‘달마시안’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올드타운 골목을 걷다가 파리 오페라극장처럼 우아한 계단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계단. 성이그나시우스 교회 앞 ‘예수회 계단’은 왕좌의게임에서 가장 충격적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가 머리를 깎이고, 벌거벗긴채 군중의 조롱 속에 걸어갔던 ‘수치의 행진’이다. 극중 최고 권력자의 딸이자 왕국의 왕비였던 세르세이 라니스터. 그녀가 권력을 잃고 셉트 성당에서 붉은 성까지 ‘참회의 행진’을 한다. 킹스랜딩 시민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Shame!”을 외치며 손가락질을 하고, 음식물을 던진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레나 헤디는 ‘몸 대역’을 썼다. 1000명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대역에 선정됐던 레베카 반 클리브가 나체로 사흘간 같은 장면을 촬영했다. 특수 효과 전문가들은 레나 헤디의 얼굴을 레베카의 신체에 디지털로 입혀 놓았다. 세르세이의 ‘수치의 행진’ 장면은 실제로 1486년 6월 에드워드 4세의 정부(情婦)였던 제인 쇼라는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간음죄와 마녀 혐의로 체포된 그녀는 반투명한 흰 튜닉만 입고 세인트폴 대성당부터 런던의 거리를 행진해야 했다.
●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인가
그런데 305년 5월. 황제는 예상 밖의 선택을 했다. 그는 은퇴했다. 로마 제국 건국 이후 몇 세기 동안 암살당하거나, 폐위당하거나, 추방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첫 번째 황제였다. 그는 은퇴 전 고향 근처인 스플리트에 10년에 걸쳐 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규모는 약 3만8000㎡. 축구장 약 5개 정도의 면적이다.
페리스타일을 지나면 돔모양의 지붕을 가진 연결 통로가 나온다. 황제가 손님을 만나는 알현실로 쓰이던 공간이다. 높이 17미터, 지름 12미터의 원형홀 정상에는 둥그런 구멍인 ‘오큘러스(oculus)’가 뚫려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이 구멍은 최고의 음향효과도 만들어낸다. ‘클라파(Klapa)’라고 부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이 상설공연되는데, 남성 4명이 반주없이 소리만으로 실크처럼 섬세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두브로브니크가 ‘킹스랜딩’의 무대였다면, 스플리트는 데너리스 타르가리엔이 군대와 용을 끌고 왔던 ‘미린’이라는 또다른 세계관의 촬영지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밑에는 높이 10미터, 길이 50미터가 넘는 지하공간이 있다. 전체 궁전의 약 8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가 키우던 용 세 마리가 갇혀 있던 ‘용의 던전(Dungeon)’으로 나왔던 공간이다. 현지 해설 가이드는 “중세 이후 1000년간 지하공간에 쌓인 배설물들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대에 석조로 지어진 지하공간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릿에서 6년간의 은퇴생활 동안 채소를 기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1700년 전 황제의 ‘은퇴레시피’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일까? 나는 은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 크로아티아 전통요리 ‘페카’
지중해 연안의 크로아티아는 신선한 올리브와 치즈, 와인을 곁들인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 있는 ‘로컬 페카(Lacal Peka)’에서는 크로아티아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철제 뚜껑이 있는 용기인 ‘페카’ 안에 송아지 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로즈마리, 올리브유, 와인,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넣고 숯불로 4∼5시간 익히면 안에서 각종 재료가 향이 어우러진 요리가 완성된다. 한국의 뚝배기 찜과 비슷한 맛이라고할까. 특히 마랑군 레스토랑에서 맛본 문어 페카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감칠맛이 났다. 식전에 나오는 ‘프로슈토’는 돼지 넓적다리를 아드리아해의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숙성시켜 깊이 있는 맛이 난다.
글·사진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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