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의 과학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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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다샤 키퍼 지음·노승영 옮김/288쪽·1만8000원·문학동네


치매와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몇 년 동안 모신 친구가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만나지는 못하고 가끔 연락만 했는데, 비용도 부담이지만 온 가족이 간병에 매달리느라 생계 이외의 다른 건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오랜만에 만나 소주 한잔을 했는데, 친구는 울면서 기억도 못 하는 어머니에게 화를 냈던 것도 미안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돌아가시고 난 뒤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자기 모습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 등 치매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를 연구하고 상담해 온 임상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병원비와 간병 등 비용과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가족 등 보호자’의 심리적 고통을 세심하게 조명했다.

“내가 바란 것은 보호자들이 겪는 어려움, 특히 자책, 겉보기에는 비합리적인 행동, 그에 따르는 후회처럼 그들이 자초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 반응들은 거의 예외 없이 관찰되었기 때문에 나는 조바심과 좌절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돌봄을 고역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성격 결함이 아니라 뇌의 타고난 작동 방식임을 보호자들이 이해하길 바랐다.”

저자는 치매에 걸린 가족에게 실랑이를 벌이고, 화를 내고, 싸우는 것은 ‘건강한 뇌’의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의지와 자제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호자가 환자의 행동을 모두 수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치매에 걸린 부모(또는 그 누군가)를 다정하게 돌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문제는 보호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뇌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이 병에 대처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는 5500만 명이 넘는다. 한국도 약 100만 명에 이르고 고령화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다. 치매가 환자만의 질병이 아니라 가족도 함께 겪는 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환자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기억의 미로’를 여행하는 가족 등 보호자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참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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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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