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도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하지만 오래된 벽돌길 뒤편에서는 추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사건을 파헤치다 총에 맞고 동료를 잃은 칼 모크 경감(매튜 구드). 아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날아온다. 미제 사건을 전담할 수사반을 꾸려달라는 것.
넷플릭스의 9부작 스릴러 <사건수사대Q>는 덴마크 작가인 아들러-올슨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제작자인 스콧 프랭크와 찬드니 라카니는 영국 배우 매튜 구드를 설득하며, 드라마의 배경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에든버러로 옮겼다. 고풍스러운 궁전과 성곽이 있고, 그 규모가 아주 크지 않다는 점에서 두 도시는 닮았다.
모크 경감 또한 대도시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비쩍 마른 몰골에 퀭한 눈으로 동료들의 실수를 비꼬기나 하는 외톨이이기도 하다. 수사 과정에서 얻은 상처와 좌절은 그를 더욱 고립시킨다. 이러한 인물과 미제 사건은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 분야의 고전인 tvN 드라마 <시그널>(2016)에는 오래전 실종된 동료의 시신을 찾으려고 부검실에 출근 도장을 찍던 고독한 여형사(김혜수)가 있었다.
자료실에서 잊혀가던 미제 사건 서류들은 곰팡내를 풍기고, 전담 형사들에겐 내면의 어두움이 늘 따라다닌다. 이들에게 남은 목표는 진범 찾기뿐. 모크는 4년 전 선박 위에서 사라진 검사 메릿의 행방을 파헤치기로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 사무실에서.
그가 또 다른 외톨이와 떠돌이들을 규합하는 과정은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고향 시리아를 떠나온 내근 직원 아크람(알렉세이 만벨로프)은 과묵하고 신사적인데, 깜짝 놀랄 만한 면모를 숨기고 있다. 늘상 주전부리를 달고 사는 빨간 머리의 로즈(리아 번) 또한 뜻밖의 영역에서 모크를 압도한다.
여기에 사건의 실마리가 될 과거 이야기가 끼어든다. 실종된 검사 메릿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과거사는 복잡하고, 그 악연들은 다양하다. 이 하나의 사건을 9부까지 끌고 간다는 것은 사건의 부피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암시한다. 시청자가 과연 끝까지 따라올까.
다행히 크리에이터이자 연출가, 작가인 스콧 프랭크의 재능은 검증돼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와 <로건>(2018)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퀸스 갬빗>(2021)을 제작해 미국 에미상을 휩쓸었던 그다. <사건수사대Q> 또한 현재와 과거를 정교하게 쌓아가며 잘 계산된 스토리텔링 작법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을 재미있게 봤던 시청자라면, 이번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퀸스 갬빗>의 주인공 베스는 체스의 천재이지만,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승부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체스판의 수 싸움보다 더욱 치열했던 내면의 투쟁 덕분이었다. <사건수사대Q>의 모크 또한 뿌리 깊은 인간 혐오에서 벗어나 성장해야 한다.
이야기의 깊이는 이처럼 충분하다. 그런데 진실을 촘촘하게 쌓아 올릴수록 속도감은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시청자로선 드라마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사건수사대Q>를 보면서 재생속도를 1.2배로 높인다면, 이는 우리가 속도감 빠른 한국 범죄물에 익숙해져서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의 사건을 파헤치는 데 9개의 에피소드가 모두 필요했을까.
<사건수사대Q>엔 그 흔한 몸싸움이나 차량 추격전도 찾아볼 수 없다. 모크는 압도적인 힘으로 혼자 적대자들을 쓰러뜨리는, 소위 ‘먼치킨’ 캐릭터도 아니다. 천재적인 두뇌 플레이로 세상을 놀라게 하거나,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동석처럼 범죄자들을 일시에 때려눕히지도 못한다(안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대신 모크는 자신처럼 어딘가 살짝 부족한 인물들을 끌어들여 시너지를 내는, 좀 더 사실적인 캐릭터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다운튼 애비>(2014)에 이어 <오퍼:대부 비하인드 스토리>(2022)에서도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던 매튜 구드는, 피폐하고 사실적인 형사 캐릭터에도 제법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수사대Q>는 부족한 스릴과 액션을 인간 이야기로 채우는 드라마다. 다 큰 어른들의 성장담도 뭉클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사건에 죽고 못 사는 ‘하드보일드 형사’의 활약을 선호하는 시청자라면, 모크의 가족과 상담사가 등장할 때마다 재생속도를 1.5배로 끌어올리고 싶어질 것이다. (특히 형사의 심리 치유를 맡는 여성 상담사 이야기는 진부함을 떨쳐내기가 애초부터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충실한 사건 일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래도 꽤 기분 좋은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시즌 2를 기대하게 하는 마무리다. 에든버러 성과 스코틀랜드 해변의 절경도 아주 가끔 배경처럼 엿볼 수 있다.
김유미 아르떼 객원기자
[<사건수사대 Q> 공식 예고편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