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후 최고의 5월을 보낸 미국 증시가 6월도 상승으로 출발했습니다. 2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0.4%, 나스닥 종합지수는 0.7% 상승했고 다우존스종합지수도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0.1% 상승한 채 마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무역 합의를 위반했으니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고 저격한 데 이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두 배 인상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을 긴장시킨 지 1거래일 만입니다. 확실히 관세 노이즈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가 낮아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역대급 5월을 보낸 미국 증시의 향방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5월 한 달 간 S&P500의 상승률은 5.6%. 5월만 놓고 보면 1997년 이후, 월간 상승률로 봐도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사실 미국 증시에서 5월은 '5월에 팔고 떠나라(Sell in May and Go Away)'는 격언이 있을 만큼 계절적으로 부진한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계절성을 거스르는 성적을 낸 것이죠.
4~5월의 반등 이후 이제 S&P500 상승률은 연초 대비 1% 수준이 됐습니다. 사실상 원점에 돌아온 셈입니다. 월가에서는 이제 미국 증시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지, 최근 두 달 간 보여준 강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감 반 불안감 반으로 저마다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금의 랠리를 시험할 만한 요인들은 무엇이 있을지 정리해 봅니다.
빅테크가 캐리한 상승
앞으로도 단기 랠리가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쪽의 가장 중요한 '믿을 구석'은 매그니피선트 7을 비롯한 빅테크, 즉 기술과 통신 섹터입니다. 매그니피선트 7은 최근 두 달 간 무려 15.3% 상승했고, 엔비디아와 TSMC 등 반도체 섹터의 선전으로 미국 반에크 반도체 ETF SMH는 4월 8일 저점 대비 33%나 급등했습니다.
클라우드 성장 둔화 우려를 씻어낸 마이크로소프트, 자본지출 투자를 오히려 늘리겠다고 선언한 메타, 중국 매출 관련 우려를 완화시킨 엔비디아, 구독료를 인상하고도 매출이 13% 늘어난 넷플릭스까지. 이들은 미국 대형 기술 기업이 보유한 AI 기술, 소프트웨어 혁신 등의 역량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을 재확인시켜줬습니다. 관세 불확실성과 경기 둔화 우려로 미국 기업들의 실적 추정치에 대한 하향 조정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월가는 기술·통신 섹터에 한해서만큼은 올해 수익이 14%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빅테크가 주도하는 미국 증시 랠리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겁니다.
JPM "전술적 강세 확신 낮아졌다"
반대로 최근의 랠리가 시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4월 말 '전술적 강세'로 전환하면서 주목받았던 JP모건 트레이딩데스크는 2일 "전술적 강세는 유지하지만 그 확신이 다소 낮아졌다"고 밝혔습니다. 기업 실적이 여전히 견조하고 거시 경제 지표가 악화되고 있지 않은 만큼 '전술적 강세' 전망 자체는 유지하지만, 무역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관세를 둘러싼 법적인 불확실성이 더해지고 있는 점은 증시에 불리하다는 겁니다.
JP모건 트레이딩데스크는 '미국 예외주의 지속'과 '셀 아메리카(Sell America·미국 자산 매도)' 담론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시장에서 미국 증시가 힘을 잃지 않으려면 기술주 상승세가 이어지고, 단기 거시경제 지표가 회복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슬라브 마테이카 JP모건 글로벌 주식총괄이 이끄는 전략팀은 조금 더 비관적입니다. 마테이카는 "최근의 반등 이후 시장의 흐름은 한층 약해질 수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과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기술적 요인이 있습니다. 최근의 증시 상승으로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의 공매도 포지션이 많이 청산됐고, 이제는 매수에 과도하게 쏠리면서 과열에 가까운 투자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입니다.
마테이카는 "이렇게 변동성이 정상화되고 투자 심리가 회복된 상황에선 자금흐름 같은 기술적 요인보다 실적, 경기 지표 등 펀더멘털에 따라 주가 흐름이 갈릴 전망"이라며 "무역 협상 관련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향후 몇 달 간 증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기 둔화 우려의 배경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를 재점화할 만한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5월 초 미중 간 관세 합의 이후에도 무역 흐름은 위축 국면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스텐 슬록 아폴로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출항이 다시 감소하면서 5월 말 기준 전년 대비 절반 수준까지 줄었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수입을 해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공급부족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는 요인입니다.
소비와 고용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미국 1분기 국내총생산(GDP) 수정치에 따르면 1분기 소비지출 증가율은 1.8%(속보치)에서 1.2%로 하향조정되면서 2년래 최저치로 하락했는데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실시간 카드지출 데이터를 보면 이런 소비 둔화 흐름이 5월 초까지 이어졌습니다.코로나19로 유예됐던 연방 학자금대출 유예 조치가 끝나면서 가계 신용점수가 하락하고, 이들의 대출과 소비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입니다.
캠벨수프로 유명한 캠벨은 이날 실적을 발표하면서 "모든 소득 분위에서 자사 제품 지출이 늘었다"며 "5년 만에 집에서 밥을 해먹는 소비자의 비중이 가장 크게 늘었다"고도 했습니다. 미국 가계가 외식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가계 소비의 원천인 고용 시장에 대한 우려도 점증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이었던 연속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최근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늘었습니다. 또 재정 지출을 줄이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 계약을 지속적으로 삭감하면서 연방 계약 의존도가 높았던 일부 민간 고용이 시차를 두고 축소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AI 도입이 늘면서 기술, 금융 등 대기업에서부터 감원과 채용 축소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고용 위축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강세장을 위한 체크리스트 다섯 가지
이제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 증시가 단기적으로 랠리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빅테크 실적 막차 브로드컴(AVGO)이 최소한 시장 예상치에 부합하는 실적을 내놔야 합니다. AI 기술주 주도 랠리와 '미국 예외주의' 내러티브를 유지하려면 '실적 쇼크'는 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브로드컴은 오는 5일 장 마감 후 실적을 발표합니다.
둘째, 5월 미국 비농업고용 증가폭이 10만 명 이상 나와야 합니다. 현재 월가 컨센서스는 전월(17만7,000명) 대비 5만 명 가량 적은 12만7,000명 안팎입니다. 고용 시장 냉각이 점진적으로 이어지는 건 Fed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단, 너무 급격하게 고용 시장이 악화하면 경기 침체 공포가 더 커지기 때문에 월가는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10만 명 이상 정도의 숫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5월 미국 고용보고서는 6일 오전 8시30분에 발표됩니다.
셋째, 6~7월 이후에도 인플레이션 지표가 완화되는 추세가 이어져야 합니다. 특히 5월 말 메모리얼데이 연휴가 끝난 6월부터 재고 소진이 가시화되고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불거지면 Fed의 금리 인하 명분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증시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넷째,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하향 안정화되어야 합니다. JP모건은 4.5~4.55% 이하에서 박스권을 유지한다면 주식 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구체적인 수치는 분석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도이치방크는 "금리 수준보다 금리 변동성이 더 중요하다"며 "금리 변동성이 급변하지 않는다면 주가도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절대 금리 자체보다 금리 변동의 원인과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국채 수익률이 성장 기대감 때문이 아닌 인플레이션, 재정 우려 때문에 오른다면 증시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상승 속도가 빠르지 않다면 그나마 대응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중요한 건 국채 수익률 상승이 증시 밸류에이션에 미칠 영향입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빗 코스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채수익률이 약간 올라도 대형주 중심의 S&P500의 밸류에이션엔 크게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S&P500 기업 대부분이 만기가 긴 고정금리 부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채권 수익률 변동성에 취약하지 않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반면 소형주는 만기가 짧은 변동금리 부채 비율이 높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장세에선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엔화의 추이도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일본 장기국채 수익률 상승과 더불어 엔화 강세까지 지속되면 미국 자산으로의 해외 자금 유입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월가는 내년까지 달러 약세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이 설사 금리 인상을 미루더라도 엔화의 상대적인 강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달러엔 환율이 140엔 이하로 내려가면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