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車회사 CEO들이 전망한 '고가의 전기차 잔혹사'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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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타이칸

글로벌 친환경 전환 바람을 타고 급성장하던 전기차(EV) 시장이 프리미엄 EV부터 슈퍼카 세그먼트까지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재규어의 전설적인 디자이너부터 하이퍼카의 선구자, 슈퍼카 브랜드의 수장들까지 일제히 고가 전기차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고가 전기차가 부유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3가지 결정적 이유를 짚어본다.

가장 큰 원인은 초고가 차량의 핵심 고객층이 원하는 '감성적 가치'의 부재다. 재규어의 전 디자인 총괄 이안 칼럼(Ian Callum)은 고가 전기차의 가장 큰 도전 과제로 '전기 파워트레인 그 자체'를 꼽았다. 슈퍼카를 구매하는 주 소비층은 전통적인 엔진음과 기어 변속의 손맛을 중시하는 세대다. 전기차 특유의 고요함은 이들에게 운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일 뿐이다. 자산가들은 단순히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기계 예술품으로서 자동차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재규어 EV 콘셉트카

두 번째는 '희소성과 차별성의 상실'이다. 전기 하이퍼카 브랜드 리막(Rimac)의 CEO 메이트 리막(Mate Rimac)은 "대중 시장까지 전동화가 보편화되면서 부유한 소비자들이 더 이상 전기차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전기차가 얼리어답터들을 위한 첨단 기술로 통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타는 흔한 구동 방식이 되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하이퍼카가 수천만 원짜리 보급형 전기차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배터리·모터 메커니즘을 공유한다는 점은 자산가들의 구매 욕구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고가 차량 소비자들에게는 전기차의 가장 큰 장점인 '경제성'이 아무런 매력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슈퍼카나 럭셔리 카를 모는 이들은 연료비나 유지비 절감에 관심이 없다. 람보르기니의 CEO 스테판 윙켈만(Stephan Winkelmann)이 시장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순수 전기차 개발을 두고 "비싼 취미(Expensive Hobby)이자 주주들에 대한 재정적 리스크"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전동화를 추진하는 것은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무모한 도박이라는 진단이다. 최근 폭스바겐 CEO 올리버 블루메는 포르쉐가 당초 세웠던 "2030년까지 판매량의 80%를 순수 전기차(BEV)로 채우겠다"는 목표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인정했다. 타이칸의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람보르기니 란자도르 EV 콘셉트카

이러한 시장 현실을 반영하듯 람보르기니는 당초 예고했던 순수 전기차 출시를 2030년 이후로 무기한 연기하고, V8 및 V12 엔진 기반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라인업에 집중하기로 전략을 급선회했다. 규제는 충족하면서도 고객이 원하는 엔진의 감성은 끝까지 지키겠다는 취지다. 한때 자동차의 미래로 추앙받던 순수 전기 기술이 초고가 자동차 시장에서만큼은 자산가들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다시금 내연기관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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