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칼럼] 착한 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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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기 칼럼] 착한 규제의 역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진다. 심각하다.”

지난달 청와대에서 규제합리화위원회 출범 후 첫 회의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화두는 성장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올해 잠재성장률은 1.7%다. 내년에는 1.5%대로 내려간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이제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역대 정권 출범 초기 때마다 규제 혁파가 핵심 국정과제로 오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규제는 시장 효율을 저해하고 성장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덩어리 규제,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규제 기요틴…. 정권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모두 규제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역대 정부의 규제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 출범 초기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시작했지만 혁신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현장의 체감도가 갈수록 떨어졌다.” 이 간극의 원인으로 이 대통령은 ‘공급자 시각’을 지적했다. “현재 규제는 현장의 필요보다 당국의 필요에 의한 측면이 많다.” 주휴수당이 대표적이다. 근무 시간이 주 15시간을 넘기는 순간 하루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20원이지만 주휴 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은 1만2384원이다. 20%의 비용 절벽이 생긴다. 결과는 ‘일자리 쪼개기’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취업자는 지난해 174만 명, 전체 취업자의 6.1%를 넘었다. 정부가 보호하려던 노동자는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났다.

기간제법의 역설은 규제 실패의 교과서다. 2년 고용 시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자 시장은 ‘1년11개월 계약 종료’로 대응했다. 이처럼 현행 규제는 거의 모두 특정 지점에서 비용이 수직으로 뛴다. 규제의 문턱 효과다. 주 15시간, 근속 2년, 5인, 30인, 50인 등 서로 다른 기준선마다 주휴수당, 사회보험, 정규직 전환,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들이닥친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 건강보험개혁법이 주 30시간 이상 근로자에게 건강보험 제공 의무를 부과하자 일부 고용주는 29시간짜리 계약으로 우회했다. 정부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라”고 다그치지만, 기업은 새로운 규제 비용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

법령이 없는 신기술·신산업에 적용되는 규제 샌드박스도 마찬가지다.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풀어주겠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2년의 실증 기간이 끝난 뒤가 문제다. 한 차례 연장할 수 있을 뿐 법령 정비가 늦어지면 사업은 ‘법령 밖 임시상태’가 된다.

네거티브 규제는 어떨까. 금지 항목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겠다는 이 방식은 역설적으로 규제 개혁이 왜 실패하는지를 입증한다. “100개 중에서 하나의 사고 가능성이 있으면 100개를 다 막아버린다” “문제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는 게 억압된 공직사회 문화다”. 모두 이 대통령이 언급한 규제 현실이다. 관료 사회는 책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포지티브 규제의 관성으로 되돌아간다.

그나마 김대중(DJ) 정부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뭘까. “성과 지표를 관리하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말했다. DJ 정부는 총건수를 작성해 무조건 반으로 줄였다. 효과도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하기는 어렵다. 이 대통령은 “산업과 기술이 발달하면 공공이 민간을 못 따라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금 한국이 딱 그렇다”고 했다. 공무원이 규제의 칼을 쥐고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결정하는 구조로는 기업이 속도를 낼 수 없다.

해법은 규제의 설계도를 바꾸는 것이다. DJ 정부가 숫자로 관리했다면 지금은 시장이 작동하도록 유인(誘引)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 주 15시간, 2년, 50인이라는 문턱을 없애는 것이다. 주휴 수당을 시급에 포함하면 편의점주가 쪼개기 알바를 쓸 이유가 없다. 정규직 전환 기업에 사회보험료를 깎아주는 인센티브를 주는 건 어떤가.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관료적 규제 대신 민간의 창의가 긴요하다”고 했다. 주휴수당 사례는 선의의 규제가 만든 나쁜 결과다. 규제 개혁이 착한 정부로 보여지기 위한 일이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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