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리스크: "아파트는 남기고, 나는 가난하게 산다"

1 week ago 24

[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은퇴하면 이 집 줄여서 생활비로 써야지.” 대한민국 50대 가장들이 술자리에서 흔히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막상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 이 다짐은 쉽게 지켜지지 않습니다.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은 기대감, 정든 동네와 이웃을 떠나기 싫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번듯한 집 한 채는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라는 부모로서의 마음이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십수 억 원짜리 값비싼 아파트를 깔고 앉은 채, 정작 마트 장바구니 앞에서는 1000원이라도 아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자산으로는 부자인데, 당장 매달 쓸 수 있는 현금은 없는 기이한 가난.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노인들이 겪는 장수 리스크의 첫 번째 얼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굴리고, 수수료를 어떻게 아끼고, 성과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하는 ‘적립과 운용’의 기술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연금의 진짜 승부처는 은퇴 이후에 찾아옵니다. 모아둔 돈을 너무 빨리 써버리면 남은 삶이 가난해지고, 반대로 돈이 떨어질까 봐 지나치게 아끼면 평생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역설적인 현상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반성한 나라는 연금 강국이라 불리던 호주였습니다.[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2020년 호주 정부의 충격 보고서 — “그들은 돈을 남기고 죽었다” 2020년, 호주 정부는 자국의 연금 체계를 정밀하게 분석한 ‘은퇴 소득 리뷰(Retirement Income Review)’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가 공개되자 호주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습니다. 호주는 1990년대부터 강력한 강제 적립 제도를 만들어 국민들이 막대한 노후 자금을 모으도록 성공시켰지만, 정작 은퇴자들은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사망할 때까지 자산의 상당 부분을 통장에 묶어둔 채 남기고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안 쓴 것이 아니라, 언제 돈이 바닥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때문에 안 쓰고 버틴 것이었습니다. 호주 정부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민들에게 돈을 모으는 법은 열정적으로 가르쳤지만, 은퇴 후 그 돈을 안심하고 사용하는 법은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 이 깊은 반성을 토대로 호주는 2022년 모든 퇴직연금 기금에게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Retirement Income Cove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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