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나라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화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비금융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두 가지. 첫째 화두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경우 시중 자금이 은행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시장 유동성이 줄어든다든지, 통화정책 효과가 약화할 수 있단 우려도 없진 않았지만 대체로 '발행 허용'으로 정리되는 모습이다.
이유는 새 정부가 국내 가상자산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국내 시장 활성화를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우리나라 금융 및 상품구매 시장을 잠식할 경우 통화 주권 약화나 자본 유출(Capital Flight)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방어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수라는 점 등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등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발의했다.
최근 해외 주요국의 정책 및 제도를 봐도 자국 또는 현지 통화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대세다. 유럽에선 현지 통화발행을 지지하는 미카법(MiCA)에 기초해서 프랑스가 2023년 4월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EURCV, 영국이 지난 5월 영국 최초의 파운드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tGBP를 발행했다.
우리의 관심인 아시아의 싱가포르, 홍콩, 일본도 아직 발행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자국 통화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음은 유럽과 다를 바 없다. 일본은 2022년 6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개정 지급결제법)', 싱가포르는 2023년 8월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 홍콩은 지난 5월 '스테이블코인 조례'를 통해 '허용'을 발표했다. 특히 금융허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싱가포르와 홍콩은 스테이블코인이 미래의 국경 간 거래(크로스보더)와 자금관리의 핵심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최근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시장 의견이다.
두 번째 화두는 비은행 내지 비금융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지 여부다. 현재 시장 은 '비금융사까지 허용'이라는 혁신론과 '은행 중심이 안전'하다는 신중론으로 구분된다. 혁신론은 '디지털 경제 패권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자산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은행 중심의 단일 구조가 아닌, 핀테크·플랫폼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로 기술 혁신과 서비스 다양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신중론은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화폐여서 비은행 기관이 발행하면 중앙은행의 통화·금리정책이 왜곡될 수 있는 점, 은행이 예금·결제 등 금융 인프라의 핵심 역할이기 때문에,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시스템의 신뢰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잡기 위해 우선 이들 고민을 다 해봤을 글로벌 주요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1, 2위 업체인 테더와 USDC의 시장 점유율(시가총액 기준)만 합쳐도 87%다. 양사 모두 핀테크·블록체인 업체로 비금융사다.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시장 점유율은 초기 단계여서 그런지 몰라도 1% 미만으로 극히 낮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국은 어떤가. 한마디로 '원칙적 금지' 입장인 일본을 제외하고는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홍콩 모두 비금융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선 프랑스, 아시아에선 홍콩이 적극적이다. 프랑스는 달러 표시긴 하지만, 미국회사인 서클(Circle)이 2024년 7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고, 홍콩은 홍콩금융관리국(HKMA)의 라이선스를 취득하면 핀테크, IT 기업 등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가능하다. 다만, 비금융사의 발행은 허용하되, 준비금·최소 자본·환급·공시 등 요건은 금융회사만큼 엄격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혁신론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왜냐하면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이라기보다 결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결제 혁신'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례에서 봤듯이 현재 안정적으로 수익을 잘 내는 회사는 위험이 생길 수 있고, Market Carnivalization(제살 깎아먹기) 위험도 있는 구조혁신을 자기 손으로 하긴 쉽지 않다. 그만큼 메기효과(Catfish effect)를 낼 수 있는 비금융사가 필요하단 얘기다. 우린 카카오뱅크를 통해 은행 등 금융권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일궈낸 경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기반은 수평적인(Horizontal) 블록체인이지 수직적(Vertical) 은행 시스템이 아니란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은행 시스템과 블록체인은 구조가 달라서 기존의 은행 송금·결제 시스템과 스테이블코인이 거래되는 블록체인 기반 간에 되레 병목(Bottleneck)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중요하면서도 새롭고 혁신적인 비금융 발행사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고 싶다. 일본은 GDP 기준 세계 4위의 강국이지만, '디지털화'에 관한 한, '도장문화'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디지털자산의 법·규제 틀에 있어 반드시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지금, 우리도 민관(民官)의 활발한 토론과 협력으로 글로벌 정합성과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법규 마련을 기대해 본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