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 사이...메스로 글을 쓰는 작가들

3 weeks ago 12

건강검진을 할 때 기분은 일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왜 그 많은 날 중 미루고 미뤘다가 그냥 있어도 몸이 경직되는 한 겨울 12월에 내몰리듯 건강검진을 받는지…. 그래서 올해는 건강검진 예약을 서둘렀다.

내 몸 좋자고 받는 건강검진에 이토록 게으른 핑계를 꼽아보자면 단연 수면내시경. 그 번거롭고 불쾌한 경험은 매년 고역이다. 어쩌면 첫 수면내시경 경험의 어처구니없음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수면 내시경을 받던 날. 혹시 ‘각성’을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까? 정신과 감각은 깨어났는데 몸은 여전히 마취 상태이고 몸을 움직이지도, 고통스럽다고 표현 할 수 없는 상태.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되면 어쩌지…… 하지만, 이런 생각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회복실에서 깨어난 나를 만났다.

현직 성형외과 전문의인 김유명 작가의 <마취>에서는 마취제 공장의 폭발 사고로 마취제가 대량 유출된다. 천 만명이 사는 거대도시의 공장지대. 제약회사의 무리하고 무모한 사업 확장에서 비롯된 폭발 사고로 스모그와 뒤섞인 고농도의 마취제를 들이마신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의식을 잃고 국가 시스템도 잠들어버린 상황.

사진출처. pixabay

사진출처. pixabay

이 소설이 더욱 생생하고 몰입감을 주어 섬뜩한 이유는 작가 김유명이 현직 의사라는 점이다. 작가는 정맥주사용 마취유도제인 ‘프로포폴’이 지니고 있는 중독성과 전신 마취제 후유증인 악성고열증에서 이 이야기를 착안했다고 한다.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취는 여러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 야망과 좌절, 탐욕과 재난, 의식과 영혼에 대한 탐구 등 여러 가지 맛이 버무려져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해결되는지 볼 수 있다. 마취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면의 진실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소설 <마취>는 꼭 이런 맛을 가지고 있다.

풍부한 의학적 지식이 전제되는 의학소설을 의사가 직접 썼다는 것 여기에 스릴러와 미스터리까지 가미된다면, 독자들은 주치의에게 진단받듯 그 이야기를 온전히 믿고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근 OTT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외상중증센터’의 원작 또한 필명 ‘한산이가’로 활동 중인 이비인후과 전문의 이낙준의 작품이다. 풍부한 의학적 장치들을 등장시켜 독특한 K-스릴러 장르를 견고히 하고 있는 정유정 작가 역시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출신임을 생각하면 그들이 배움이 풍성한 이야기에 영향을 주고 있음은 틀림없다.

넷플릭스 '외상중증센터'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넷플릭스 '외상중증센터'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195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여 오사카 대학교 부속 병원 외과 및 마취과 수련의로 근무, 그 후, 오사카 부립 성인병 센터에서 마취과의, 고베 에키사이카이 병원에서 일반 외과의, 재외 공관 의무관으로 각각 근무했던 ‘구사카베 요’.>

현직 의사의 눈으로 노인 의료를 박진감 있고 사실적으로 그린 <반신불수로 데뷔한 그는 이후에도 국가의 획일적인 의료 통제와 과실 문제를 다룬 <파열>로 베스트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안락사법 제정을 둘러싼 <신의 손>에 이르기까지. 의료 시스템과 이를 둘러싼 문제점.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이 몰입감을 더한다.

특히 <신의 손>은 안락사법 제정을 둘러싼 의사와 환자, 정치인,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게 되는 죽음과 ‘스스로 죽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스터리 소설 <신의 손 1, 2> 쿠사카베 요 지음, 학고재, 2012 / 사진출처. ⓒ YES24

미스터리 소설 <신의 손 1, 2> 쿠사카베 요 지음, 학고재, 2012 / 사진출처. ⓒ YES24

잠시의 휴식조차 허용하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는 스물한 살의 말기 항문암 환자 쇼타로. 소설은 병원의 간판 의사인 외과 부장 시라카와가 쇼타로를 안락사시킨다. 환자가 안락사당했다는 익명의 투서가 파문을 일으키고, 결국 시라카와는 과실치사와 살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이를 이용해 안락사법을 제정하려는 의료협회(JAMA)는 시라카와를 안락사의 선구자로 포장해 법 제정을 위해 이용한다. 여기에 거물 정치가가 후원하면서 본인들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려 한다. 이 과정에 안락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살해당하게 되고, 수사망이 좁혀지는 가운데 죽음의 배후로 지목된 JAMA의 대표와 부대표마저 죽은 채로 발견된다. 과연 연이은 죽음의 배후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종합병원’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이를 의학 드라마로 볼 것이냐, 로맨스 드라마로 볼 것이냐, 현실성 없는 ‘판타지 드라마’로 볼 것이냐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보는 내내 흥미롭고, 재미있다. 하지만 오늘 예를 든 소설들처럼 가장 정직하고 정교한 리얼리티 학문인 의학이 소설이라는 장르와 만나 미스터리나 스릴러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 생명은 판타지든 미스터리든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인가 보다.

소심이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