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움’과 ‘긋기’로 새로운 의미를 담다

2 weeks ago 9

무제. Life지를 지운 작품.

무제. Life지를 지운 작품.

매일 혹은 매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모나미 볼펜으로 검은색이 될 때까지 지운다. 때로는 연필이 짤막한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칠해, 흑연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이 광물처럼 반짝이기도 한다. 미술가 최병소(82)가 오래전부터 해온 이런 ‘긋기’로 만든 근작들을 공개하는 개인전이 24일 서울 성북구 우손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한다.

작품 약 30점을 공개하는 이번 전시는 최병소의 대표작인 신문과 잡지 작품부터 손가락 크기의 성냥갑 작업, 그리고 쓰고 남은 종이들을 이어 붙어 만든 6m 대형 설치 작품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은 연필과 볼펜으로 긁어 까만 광택이 생겼을 뿐 아니라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나 ‘라이프’처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잡지는 로고만 남긴 채 지워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러한 작품들은 1970년대 한국 실험 미술의 한 단락으로 재조명받았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
최 화백의 딸 최윤정 씨는 17일 동아일보와 만나 “아버지께서 신문 작업을 처음 시작한 1970년대에는 여러 암울한 뉴스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지우기를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복잡한 생각이나 사심을 지우고 평온한 마음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만든 작품에는 까맣게 지워진 신문 지면과 그날 하늘을 찍은 사진을 나란히 배치한 것도 볼 수 있다. 6월 2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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