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진보 정권 때마다 집값이 올랐던 경험이 이번에도 되풀이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집권한 정부를 진보와 보수로 나눠 살펴볼 경우 노무현·문재인 정권 때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각각 40%대, 20%대 오른 반면 보수 정권 집권 대는 하락하거나 10%대 오르는 데 그쳤다.
이 대통령이 노무현·문재인 정권 때처럼 집값 상승을 세금 인상을 통해 억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점은 차별화되지만 경기불황에 기준금리 인하기가 본격화한 만큼 자금 수요가 부동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2027년까지 주택 공급도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5월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사진=뉴시스)
◇ 진보정권 들어서면 집값 오른다던데...
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03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43% 급등했다. 부동산원의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가 2003년 11월부터 통계가 작성된 점을 고려하면 이달부터 노 전 대통령 퇴임일이 있던 달까지의 상승률을 계산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25.8%로 집계됐다. 실거래가 기준으로 보면 무려 95.3%나 급등했다. 전국 아파트 가격도 노무현 정권 때는 25.5%, 문재인 정권 때는 22.1% 상승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고, 문재인 정권때는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강화 등 부동산 관련 보유세·거래세가 모두 강화됐으나 집값이 오히려 상승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선 코로나19 팬데믹에 기준금리가 연 0.5%로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자 유동성이 넘치면서 부동산 매입 수요가 증가했다. 다주택자 세금 강화까지 더해져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심화, 집값 급등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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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달부터 퇴임식이 있었던 달까지의 가격 등락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3월 취임했으나 아파트 매매 가격 지수가 2003년 11월부터 집계됐기 때문에 이때부터 상승률 적용(출처: 한국부동산원) |
반면 보수 정권에선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집값 상승폭이 크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에선 전국 아파트 가격이 10.1% 올랐고 서울은 12.5% 상승하는 데 그쳤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 메시지가 나올 정도였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내수 부진에 매수 심리는 악화했다. 집값이 떨어진 경우도 많았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침체가 짙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은 4.2% 하락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고물가·고금리기로 전국 아파트 가격은 12.2%, 서울은 4.0% 떨어졌다.
진보 정권의 ‘집값 상승 학습효과’로 인해 이재명 대통령 집권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기 돌입과 공급 부족 우려 지속이 집값 상승을 자극할 변수로 떠오른다.
한국은행은 5월말 올해 경제성장률을 1.5%에서 0.8%로 하향 조정하면서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로 낮췄다. 기준금리가 하반기에 추가 인하되면서 연말 2%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부동산팀 수석은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이자 부담 완화, 자금 유입, 주택 수요 증가로 이어져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올해부터 2027년까지 공급 절벽이 예상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입주물량은 28만여가구로 전년(36만 5000여가구) 대비 23.3% 감소했고 2026년과 2027년엔 각각 21만 2000여가구, 19만여가구로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7월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가 시행됨에 따라 7월 이전에 집을 매수하려는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다.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아파트 매매 건수는 이날 현재 4724건으로 집계됐다. 매매 계약 후 한 달 이내 신고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5월 매매 건수는 7000~8000건 가량 되고 6월엔 이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형석 우대빵부동산연구소 소장 겸 미국 IAU 교수는 “매매 계약 후 한 달 이내 신고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5월 매매 건수는 7000~8000건 가량이 되고 6월엔 이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며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 전에 집을 사겠다는 움직임이 많다. 5~6월 거래가 많이 되면서 가격이 꽤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집값 오르면 대책은…세제 강화 대신 대출 규제 vs 세제 또 강화할 듯
이러한 시장 여건을 고려하면 강남3구를 비롯한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 수석은 “서울은 고가 단지 중심으로 신고가 경신이 나타나고 있다”며 “수도권 역시 과천, 하남, 분당, 평촌처럼 서울 접근성이 우수하고 정비사업이 가시화된 지역은 서울 대체지로 수요 유입이 꾸준하다”고 밝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강남은 단기간에 전 고점을 모두 돌파했고, 상급지 갈아타기와 똘똘한 한 채 현상으로 과천 등까지 올랐지만 수도권 내에서 광명, 양주, 의정부 등은 하락했다”며 “하반기엔 시별, 광역별로 순환매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는 받쳐주고 공급은 부족한 상황에서 집값 상승폭이 커질 경우 과연 이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세금 인상 카드’를 건드리지 않을 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마포·성동구, 과천 등 집값 상승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확대, 투기과열 지구 및 조정 대상 지역 지정 등의 조치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 수석 전문위원은 “토허제, 투기과열지구 확대 등은 윤석열 정권 때도 했던 시장관리 조치로 규제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공약에 ‘초고가 아파트 가격 상승 억제’ 정책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만큼 양도세, 종부세 중과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 세제보다는 대출 문턱을 높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공약으로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선 부동산 수요 억제책으로 대출보다 세제를 강화하면서 풍선 효과 등이 거셌는데 대출을 강화할 경우엔 부작용이 덜 할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심 소장은 “이 대통령은 큰 정부를 지향한다. 큰 정부는 세금을 거둬서 재정을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세금으로 집값을 안 잡겠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며 “수요 증가에 집값이 오르면 10월 추석 전에 부동산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세금 측면에서 강력한 대책이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종부세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상향 조정하거나 내년 5월로 유예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시기 조정 등이 나올 수 있지만 세제를 강화하더라도 집값은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