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땅값은 정권과 관계없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 왔다.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인력, 바로 ‘강남 불패’ 신화다. 그렇다면 이 신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신간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은 1960년대 말 강남 개발이 본격화한 시기부터 출발해 강남이 어떻게 오늘날 부촌의 상징이 됐는지 역사적으로 파고든 책이다.
도시문헌학자인 김시덕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자랐다. 강남 개발이 한창인 시기였기 때문에 도시 변화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 나아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강남이 발달하게 된 세 가지 요인으로 아파트와 산업, 교통을 꼽는다. 강남은 한때 섬유단지, 산업철도 유치 등을 고려했지만 이를 접고 대기업과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교통 인프라와 백화점 등 유통 기능을 결합해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자본의 흐름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강남도 다양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강남 부자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제까지 강남을 이야기한 사람들의 말속에서 강남은 정치적인 정쟁의 대상이자 경제적인 상승과 몰락의 무대일 뿐이었다”며 “(이번 책에선) 100억원짜리 아파트 집주인과 빌라 세입자가 강남 주민으로서 동등하게 다뤄진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축 아파트 단지가 턱없이 부족한 게 강남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유재산인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는 데 엄격하게 연한을 설정하고, 층고와 일조권을 규제하는 등 정부와 서울시는 수많은 간섭을 통해 강남에 아파트 단지 공급을 제한해 왔다”며 “이러니 이 지역 신축 아파트 단지들의 가격이 떨어질 리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제2의 강남은 나올 수 있을까? “송파구와 성남시를 하드웨어 삼고, 수원시의 삼성전자 본사로 대표되는 반도체 사업을 소프트웨어 삼아 강남 3구에서 시작된 개발 축은 경기도 동남부를 향해 뻗어나갈 것”이란 게 저자의 관측이다.
인문학자의 발걸음을 따라 강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옛 문헌과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 등을 첨부해 강남의 변화를 생동감 있게 전한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