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전 세계 정치, 경제 엘리트가 모인 다보스포럼 회의장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문제는 당신들 같은 부자와 엘리트의 조세 회피다”라는 한 젊은 사상가의 일갈에 참석자들은 당황스러워했고, 그때의 장면을 담은 영상은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도발적인 연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지만,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평가받는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평생 ‘8만 시간’을 일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매일 반복하는 일이 지겹지 않나요? 일에 진심과 열정을 쏟고 있나요?” 브레흐만은 최근 영미권에서 출간된 책 <도덕적 야망(Moral Ambition)>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묻는다. 개인의 성공을 향한 과도한 집착과 행복 추구를 위한 사회적 열망을 꼬집으며 우리의 시간과 재능이 엉뚱하게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 ‘인간의 선한 본성’과 ‘주체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편안한 삶’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인생의 방향타를 틀 것을 권한다.
성공의 기준이 ‘돈’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은 오로지 돈에만 혈안이 된 채 살고 있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돈에 목숨을 건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몰라도 명확한 의미와 목적 없이 그저 돈의 노예가 돼 살아가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학자 로베르트 두어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부유한 국가의 임금노동자 가운데 4분의 1은 자신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성공과 돈이 전부가 된 세상에서 이 책은 ‘도덕적 야망’을 일깨워준다. 도덕적 야망이란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의지’다. 위대한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낸 인물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누구나 기후 변화, 불평등, 그리고 또 다른 팬데믹과 같은 도전에 맞서 시간과 재능을 사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는 것을 넘어 역사 자체를 바꿀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는다.
‘미국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랠프 네이더는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기업에 맞서 투쟁해 왔다. 1960년대부터 소비자 보호 운동에 앞장선 그는 자동차 제조사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차를 생산하는 것을 비판하고, 음식 살충제 전자파 등에 관한 연구와 시민운동으로 미국 사회가 더 안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했다. “리더십의 기능은 더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더 많은 사람이 서로 책임을 분담하고 스스로 의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반면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였다가 티베트 불교의 승려가 된 마티유 리카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렸다. 촉망받는 과학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서구 문명을 버리고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간 그에 대해 브레흐만은 이렇게 평가한다. “젠장, 세상은 불타고 있고,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명상하면서 행복해하고 있다고요? 제게는 그다지 존경할 만한 일이 아니군요.”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