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흐름을 가장 크게 바꾼 인물은 누굴까.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같은 정복자 혹은 뉴턴, 아인슈타인 등 천재 과학자가 떠오를 것이다.
<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는 그 어떤 위인과 학자도 ‘균’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 조너선 케네디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런던퀸메리대에서 글로벌 공중보건을 가르치고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 역사의 흐름을 좌우했다는 게 책의 요지다.
책은 인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모두 호모사피엔스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인류도 여러 종족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부터 데니소바인, 호모플로레시엔시스, 호모루센시스 등이 살았다. 많은 학자는 이 중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은 건 우리 조상이 더 뛰어난 지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책은 이 주장을 반박하며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비결이 균에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여러 대륙을 누비며 먼 거리를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병원균에 노출돼 면역을 기를 수 있었다. 반면 그러지 못한 다른 종족은 호모사피엔스로부터 옮은 바이러스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했다는 것이다.
문명이 발생한 이후에도 균은 역사의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염병이 아테네의 전력을 약화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고 기록했다. 말라리아는 로마를 한니발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해 줬다.
바이러스는 종교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끼쳤다. 2~3세기 로마제국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공한 기독교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역설적으로 기독교 중심 세계의 쇠락을 불러온 요인도 균이었다. 흑사병이 유럽을 초토화할 동안 가톨릭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교회의 권위는 추락했다. 그 결과 종교 중심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유럽은 르네상스와 근대로 나아갔다.
이렇게 수세기 동안 구대륙(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온갖 전염병이 오갔고, 인류는 차근차근 면역력을 쌓았다. 하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고립된 아메리카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전염병 전쟁’이 또다시 일었다. 유럽인이 몸에 품고 온 바이러스가 대서양을 건너면서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처음 만난 바이러스에 대항할 면역력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빼곡해지면서 전염병은 또다시 중요한 숙제가 됐다. 도시에서 콜레라 같은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다. 바이러스는 상하수도 시스템, 공중보건, 보험, 지방정부 제도 등 현대 국가의 구성 요소와 정치 체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의학이 발전하고 위생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전염병에 시달리는 인구가 많다. 저자는 이를 두고 “빈곤이라는 전염병”이라고 표현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는 가라앉지 않는 전염병 때문에 여전히 평균 수명이 50여 년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 발전을 저해해 공중 보건 시스템이 자리 잡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균을 주제로 과학, 사회, 종교 등 인류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망라한 책이다. 역사와 질병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많은 정보를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이 돋보인다. 400쪽이 넘는 분량에도 소설책을 읽듯 술술 넘어간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