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시그리드 누네즈 지음·장성주 옮김/316쪽·1만8500원·복복서가
2018년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을 받은 미국 작가의 데뷔작이다.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의 삶이 짙게 배어 있다. 소설 형식을 띠지만 자전적 요소가 많아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작품은 아버지와 어머니, 발레, 연애를 다룬 4부로 구성됐다. 이민자인 아버지는 영어가 서툴고 말수가 적다. 어린 화자에게 그는 가족과 동떨어져 있는 낯선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화자는 생각을 바꾼다. 아버지는 “말을 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독일을 떠나온 어머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난한 삶을 원망한다. 집에선 부부싸움과 욕설,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상처 입힌다.방황하는 화자를 붙잡아준 건 발레였다. 발레는 답답한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이자 훼손된 존엄을 되찾는 공간이다. 집의 권위에는 이유가 없지만 발레의 엄격한 규칙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몸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동안 화자는 자신도 중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시간이 흘러 화자는 가족에게서 독립한다. 그러나 집을 벗어났다고 해서 과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알코올 의존증, 마약, 범죄 전력이 있는 남성과 불안한 관계를 이어간다. 남성의 서툰 영어와 이민자로서의 처지는 화자에게 아버지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은 어쩌면 오래된 상처를 되풀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을 피해야 할까. 그럼에도 화자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사랑에는 충족의 가능성뿐 아니라 모험과 위험의 가능성도 있지만, 나는 적어도 사랑할 때는 두렵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것도, 괴롭히는 것도. 사랑과 괴로움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언어에서 같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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