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의 작은 도시 충남 서천. 그곳은 갯벌과 해풍, 소곡주와 백제의 유산이 어우러진 ‘느린 여행’의 성지다.
서천군 장항읍에 있는 장항스카이워크는 높이 15m의 공중 산책로로 갯벌과 바다, 송림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매년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매년 8월이면 보랏빛 맥문동꽃이 정취를 더하는 송림자연휴양림에서 ‘장항 맥문동꽃 축제’가 펼쳐진다. 감성 짙은 송림 자연휴양림을 만끽하기 위해 많은 여행객과 사진작가들이 축제 현장을 찾는다.
갯벌이 바다와 육지를 잇는 중간 지대이듯, 장항읍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경계의 도시’라 불린다. 장항은 과거 장항선 철도의 종착역이자, 장항항 개항을 계기로 서천군 내에서 급속히 도시화한 지역이다.
1936년 문을 연 장항제련소는 지역 경제의 중추로 자리 잡았지만 이후 시대의 변화와 산업 구조 개편으로 인해 도시의 성장은 점차 완만해졌다.
이 변화 덕분에 서천의 자연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될 수 있었다. 금강 하구에 위치한 서천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며 생물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렸다.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갯게 등 희귀 생물들의 서식처로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이곳은 관광뿐 아니라 생태교육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항 스카이워크의 끝 지점에서 만나는 ‘기벌포 해전 전망대’는 서천의 역사적 깊이를 상징한다. 기벌포는 통일신라가 백제·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뒤, 당나라와의 패권 다툼 끝에 벌어진 최후의 해상 전투지다. 백제 멸망 후에도 이 지역은 망국의 아픔과 복권의 희망이 교차하던 땅으로, 백제 왕족과 유민들이 소곡주를 빚고 전통 천연섬유 한산모시의 전통을 이어갔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서천의 문화와 생활 속에 여전히 녹아 있다. 장항읍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한산면은 ‘한산소곡주’와 ‘한산세모시’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의 본고장으로 지금도 한산모시마을에서는 소곡주와 모시 짜기 체험 행사가 열린다.
서천 남서쪽 해안을 따라 조성된 ‘서해랑길’ 56~58코스는 도보 여행자에게 인문·생태적 통찰을 동시에 제공한다. 장항 일대를 관통하는 56코스를 지나 57코스로 접어들면 아목섬, 선배섬, 할미섬 등 이름도 정겨운 섬들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맞이한다.
선도리 갯벌 체험장 인근의 ‘쌍도’에는 고대 어업 방식인 ‘독살’이 남아 있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했던 옛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58코스에 이르러선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마량 해돋이 마을이 여정을 장식한다. 동백정에선 붉은 동백꽃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 속에서 잊고 지낸 계절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다. 육지에서 바다로 길게 뻗은 마량곶은 서해에선 드물게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서천 여행의 완성은 단연 먹거리다. 홍원항은 주꾸미, 꽃게, 전어, 갑오징어 등 제철 해산물의 보고다. 새벽이면 항구 인근에서 갓 잡은 해산물을 파는 시장이 열려,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싱싱한 회와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바다 내음을 가득 담은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춘장대해수욕장은 서천의 대표 여름 명소다. 드넓은 백사장과 깨끗한 수질, 황홀한 낙조가 어우러져 매년 수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춘장대’라는 이름은 이 일대 토지를 기부한 땅 주인의 호 ‘춘장(春長)’에서 유래했으며 젊고 활기찬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서천=강태우 기자 kt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