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portrait)는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한 회화다. 누군가의 얼굴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긴 터라 풍경화나 추상화와 비교하면 해석의 진입장벽이 낮다. 하지만 초상화를 솔직한 그림이냐 묻는다면 섣불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얼굴이라는 건 단지 표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진열된 표정은 종종 진실을 숨긴 채 미화될 때가 많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정수영 개인전 ‘I want to be invited, but I don’t want to attend’에는 15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초상화라 생각되는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없다. 여느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팬트리’ 내부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팬트리는 식재료를 비롯해 술, 조미료, 통조림, 주방기구 등 생활필수품을 보관하는 작은 저장실인데, 어딜 봐서 ‘Pantry(팬트리)’라 이름 붙은 이 연작들을 초상화라 말하는 걸까.
언뜻 보기엔 정물화에 가까운 그림이지만, 초상화라 소개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흐트러진 식기류,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조심스럽게 쟁여둔 과자들까지, 문을 열기 전까지는 누구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결코 숨길 수 없는 ‘나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타인의 내면을 팬트리에 빗댔다”면서 “팬트리 속의 모습을 통해 가장 내밀한 초상화를 그려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단출하지만 구체적인 물건, 정리되지 않은 선반과 식재료는 주인의 무의식이 밴 얼굴 없는 초상화인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Pantry 7’과 ‘Pantry 8’이다. 같은 팬트리이지만 열리는 순간과 활짝 열린 모습을 각각 담아낸 그림이다. ‘Pantry 7’을 보면 마치 팬트리 주인이 예술적 소양이 깊고 질서(cosmos) 정연한 사람 같다. 앤디 워홀, 알렉스 카츠, 앙리 마티스, 요시토모 나라 등의 그림과 엽서들이 문에 다소 과할 정도로 깔끔하게 붙어 있다. 하지만 ‘Pantry 8’에 나타난 팬트리 속 공간은 제대로 정리정돈 되지 않은 혼돈(chaos) 자체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자화상일 가능성이 크다. 얼굴은 없지만, 이보다 솔직한 인물 묘사가 또 있을까. 치토스 등 자극적인 스낵들로 가득찬 것 역시 식사보단 군것질을 즐기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삶의 취향과 가치관이 농축된 팬트리는 그 주인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Pantry 6’엔 앤디 워홀의 작품으로 유명한 캠벨의 토마토 수프 통조림에 아랍어가 쓰여 있다. 가장 미국적인 맥주로 꼽히는 버드와이저 캔에도 아랍어가 있다. 서구적 식습관을 선호하는 이가 중동 등 아랍 문화권에서 살고 있거나,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독특한 팬트리 초상화는 일상적 공간을 그리는 정수영의 작업방식의 한 갈래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의 왕립예술학교 유학을 다녀온 그는 겉보기와 달리 ‘인싸(무리에서 잘 어울려 노는 사람)’와 거리가 멀다.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을 혼자 보내는 그는 컵에 남은 물 자국, 먹다 남은 음식, 바닥에 놓인 옷가지 등 스쳐 지나갈 법한 장면을 보다 오래 응시한다. 바에 진열된 술병의 비워진 정도를 보며 이곳에 들른 사람들이 쌓은 시간을 생각해보는 ‘Waiting for Nobody’ 같은 작품들을 이렇게 그렸다.
대체로 특별한 연출 없이 사실에 가까운 재현을 통해 형태를 드러내지만, 온전한 재현은 아닌 점이 재밌는 요소다. 정서적 밀도에 따라 사물이 커지거나, 실제보다 작아질 때도 있다. 이우성, 지근욱, 장재민 등 최근 30~40대 신진작가 발굴에 앞장선 학고재가 주목한 이유다. 작가는 “감정적이지도, 그렇다고 정보전달에 치우치지도 않은 평면과 사실의 중간에 위치한 회화”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