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대치동 학원가’를 연상케 하는 문장들. 실은 10일 국내 출간 예정인 대만 작가 우샤오러(吳曉樂)의 소설집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마르코폴로)에 쓴 작가의 말 일부다.
우 작가는 7년간 과외 선생으로 일한 경험을 이 소설들에 녹여냈다고 한다. 2018년 현지에서 드라마화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대만 최대 방송 시상식인 금종상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대사(‘한국 아이들의 적은 학교, 학원 그리고 부모다.’)를 즐겨 인용한다”며 “한국을 타이완으로 바꿔도 얼추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최근 대만 소설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며 한국 팬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 작가의 소설처럼 역사·문화적으로 닮은 점이 적지 않아, 친근하면서도 공감대가 크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주빈으로 대만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국내 출판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넓혀 가는 분위기다.18일 시작되는 서울도서전은 대만 작가만 23명을 초청했다. 대만 대표 작가로 불리는 천쉐(陳雪)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2023년 말 국내 출간됐던 ‘귀신들의 땅’(민음사)의 천쓰홍(陳思宏), 소설 ‘쓰웨이 1번가’로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과 일본번역대상 대만 금정상을 휩쓴 양솽쯔(揚双子)도 방한한다.
한 출판사 대표는 “도서전 첫날에만 대만 현지 출판사, 에이전시 9곳과 30분씩 연달아 미팅을 잡아놨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도서전을 앞두고 덩지우윈(鄧九雲)의 소설 ‘조연 여배우’(글항아리), 천쉐의 소설집 ‘악녀서’(〃)가 출간되기도 했다.
대만과 한국은 일제 식민 지배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이산 경험 등의 역사가 비슷하다. 대만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전통의 급속한 붕괴나 도농 격차, 극심한 빈부 차이와 과도한 경쟁 등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13쇄를 찍으며 인기를 끈 ‘귀신들의 땅’은 1980년대 대만 작은 마을의 2남 5녀 대가족을 주인공으로 군사 독재와 도시 개발 등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그렸다.다채로운 소재도 장점이다. 김효진 마르코폴로 출판사 대표는 “대만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문화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등 개방적인 면들이 적지 않다”며 “대만 문학도 억압되지 않은 상상력으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정치적 혼란을 피해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넘어온 작가들이 합류하며 대만 문학은 더 풍성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콩 우산 혁명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찬와이(陳慧) 작가가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태어나 대만에 정착한 장구이싱(張貴興) 작가의 ‘강을 건너는 멧돼지’(마르코폴로)는 2020년 홍콩 ‘홍루몽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의 출판·문학 교류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한국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 2020, 21년 연속 초청받는 등 대만 쪽 반응이 뜨겁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대만 문학은 중국과 비교해 확실히 친숙하고 결이 맞는 느낌”이라며 “대만 문학의 국내 소개가 그간 다소 미미한 편이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뀐 만큼 교류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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