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여기서 아빠를”...무간판 한의원에 代 이어 몰려드는 난임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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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복지 “할머니도 여기서 아빠를”...무간판 한의원에 代 이어 몰려드는 난임 환자들 90년 역사 ‘난임성지 한의원’명동 배원식한의원 이끄는 이종안 원장한의학 선구자 배원식 제자임상 경험과 비방 전수받아처뱡약 50조 손수 만들어환자 출산 성공률 60%대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는 곳 말고, 치료가 절실한 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공간이면 충분합니다.”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명동 대로변 건물, 간판 하나 없는 오래된 한의원이 있다. 대기실은 전국 방방곡곡과 해외에서 온 환자로 북적인다. 여느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물리치료기나 여벌 침대는 없다. 청진기와 혈압기, 깊고 진한 한약 냄새만 공간을 채운다. 올해로 개원 90주년을 맞은 배원식한의원이다.16.5㎡(약 5평) 남짓한 진료실에는 1945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나무 책상이 있다. 우리나라 한의학 선구자인 고(故) 배원식 원장의 뒤를 이어 제자인 이종안 원장이 이 책상에서 맥을 짚는다. 이 원장은 “많은 환자가 이 모서리를 잡고 한참 울었던 자리라 이렇게 새까매졌다”며 스승의 한의학 정신과 난임 치료 철학을 풀어냈다.배원식한의원의 역사는 우리나라 한의학의 역사다. 고 배 원장은 1930년대 평양 의학기성학교 출신으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지식을 두루 섭렵한 인재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국으로 건너가 의사 면허를 취득한 그는 티푸스가 창궐했을 때 직접 조제한 처방약으로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만주국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이 원장은 “이를 계기로 당시 선생님이 만주에 체류하던 최남선, 이광수, 신익희 등 주요 지도자들과 깊은 교류를 맺었다”며 “특히 육당 최남선은 아들들이 서울대병원 의사였음에도 평생 선생님께 진료를 의뢰했다”고 말했다.해방 후 귀국한 배 원장은 6·25전쟁 중 피난지 부산 임시국회에서 한의사 제도를 명문화한 국민의료법 통과를 주도했다. 이후 국내 최초의 한방 임상의학 전문지인 ‘의림’을 창간하고 처음으로 한의과대학 교과서를 집필하는 등 한의학의 기틀을 세웠다.이 원장이 배 원장을 처음 만난 때는 1995년이다. 당시 한의대를 갓 졸업한 그는 당대 대가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배 원장의 학술 토론을 접한 뒤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한 달 넘게 매일 한의원에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 끝에 사제의 연을 맺었다.병원을 물려받은 제자가 가장 집중하는 분야는 난임 진료다. 스승에게서 부인과 질환에 대한 임상 경험과 비방을 전수받은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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