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에 반하는 입자들의 반란
한-일 작가의 만남으로 성사된 작품 <Between the Fragments>
일본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JPS 갤러리 도쿄>에서 작가 김지원(JIWON KIM)과 나오토 후치가미(Naoto Fuchigami)가 공동전시 <Between the Fragmens>를 열었다.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지원은 여성의 몸을 왜곡하고, 분절하여 한지 위에 ‘바디 콜라주(Body Collage)’를 펼쳐내는 작가다. 여러 겹으로 중첩된 여성의 몸을 부분적으로 실로 꿰매고, 불태워 작품을 완성한다. 무사시노 미술대학(武蔵野美術大学)에서 유화를 공부한 김지원 작가는 이 모든 작업을 직관적으로 구상하며, 감각적으로 색칠해낸다.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과 ‘자기검열’, ‘폭력성’과 ‘상처’를 시각화하고, ‘치유의지’를 행동으로 남긴다.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현장을 한국의 전통 한지로 선택한 것도 이색적이다. 마티에르에서 여성의 신체는 하나의 의식행위가 된다. 전시장에서 그는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경험한 외모에 대한 ‘차별’과 ‘콤플렉스’를 토대로 이를 수용하고 치유받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상처로 숨 쉬면 새살이 돋아나듯, 김지원의 작품은 불편함보다는 치유에 가깝다. 그의 맑고 영롱한 컬러와 묘하게 어우러진 한지의 마티에르가 그렇다.
나오토 후치가미는 반도체 웨이퍼를 분쇄해 원소의 형태로 탈바꿈시켜 기술의 원시성을 회화적으로 상기시킨다. 작가 이전에 실제로 후지쯔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양자역학과 원시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21년 회사를 떠나 작가로 전향하면서 기술의 집약체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물질과 관계를 미시적 관점에서 탐구하여 독창적인 회화를 창작해냈다. 분쇄된 실리콘 웨이퍼(반도체)를 재료로 사용한 <ℏ 시리즈>는 미세한 생물과 은하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는 김지원과 나오토 후치가미의 공동작업 <Between the Fragments>이 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지원은 전통적인 ‘미(美)’에 대항하는 몸의 반란을, 나오토 후치가미는 ‘기술’에 대항하는 재료의 반란을 입자화했다. 수채와 아크릴로 밑그림을 깐 한지 위에 김지원은 콩테로 몸의 파편을 묘사하고 자수를 더했으며, 나오토 후치가미가 반도체의 분말과 파편을 사용해 선을 더했다. 재료가 다른 두 작가의 선이 교차하는 지점은 여성의 몸으로 쓴 디지털 서정시 같다.
작가 모두 90년대 중반의 젊은 신생 작가다. 가끔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들이 모여, 신선한 작품을 만들고 예술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일본에서 만난 작가의 입자들이 향후 어떤 질료로 진화할지 기대가 크다. 전시는 6월 1일까지 진행되니, 도쿄 오모테산도에 갈 일이 있다면 JPS 갤러리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