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초유의 일방통행
羅 ‘패스트트랙’ 실형 구형에
與의원, 간사 선임 반대 주장
秋, 국힘 불참속 무기명 투표
野 “법사위, 민주당놀이터냐”
“나빠루 안돼” vs “야! 일어나”
고성·막말에 사과 요구 빗발
‘나경원 간사 선임’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또 난장판으로 전락했다. 간사 자격을 두고 고성과 막말을 주고받던 여야는 상대 당 의원을 향한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반발 속에 간사 선임 안건을 무기명 투표에 부쳐 부결시켰다. 각 교섭단체가 간사를 선정하면 상임위원회가 이를 수용해왔던 전례를 깨고 무기명 투표를 통해 간사 선임을 막은 것은 헌정 사상 찾아보기 어렵다.
추 위원장은 이날 법사위원회에서 나 의원 간사 선임 건을 전격 상정했다. 지난 2일 추 위원장이 “나 의원은 법사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여당 의원들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안건의 상정을 거부했다. 당시 야당이 거세게 항의하자 이번엔 정식 안건으로 올리되 표결에 부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선임 반대를 거듭 주장했다. 나 의원이 2019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건과 관련해 전날 징역 2년이 구형된 상황에서 법사위 간사가 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 12·3 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면회한 점도 문제 삼았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내란을 옹호하고 내란 수괴와 내통·방조했으며 사실상 공범으로까지 보이는 분이 법사위 간사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박균택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변호했고, 박지원 의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재판 중인데 법사위에 있다”며 “누가 누구한테 이해 충돌을 얘기하나”라고 말했다. 나 의원도 “대법원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유죄 취지로 판결이 환송된 이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민주당 출신인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나 의원을 겨냥해 “다시는 이런 인간이 국민을 대의한다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간사까지 나오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말하자 회의장 분위기가 격해졌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야! 일어나 봐”라며 고성을 질렀고, 같은 당 법사위원들도 사과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내란 정당이 그런 얘기 할 자격이 있느냐” “나빠루는 안 돼” 등으로 받아쳤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나 의원을 향해 “남편이 법원장인데 아내가 법사위 간사를 하려고 해서 남편까지 욕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곽 의원은 “아내는 뭐 하시냐.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된다”며 항의했다. 박 의원은 “돌아가셨다”고 답했고,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일제히 “무례하다” “인간 좀 돼라”고 고함을 질렀다.
회의장이 난장판으로 치닫자 민주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인사 사항이기 때문에 국회법 112조 5항에 따라 무기명 투표로 투표해줄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상임위 간사 선임은 통상 각 당의 추천을 존중해 ‘호선(互選)’으로 처리하는 것이 국회법(50조 2) 규정이고, 운영상 관례기도 하다. 하지만 추 위원장은 이런 전례를 깨고 표결을 선언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간사 선임을 무슨 표결로 하나” “독재 운영” 등 반발하며 모두 퇴장했다. 야당의 불참 속에 이뤄진 표결에서 나 의원의 간사 선임 안건은 투표수 10표 중 반대 10표로 부결됐다.
국민의힘은 야당 간사 선임 안건 부결 이후 “법사위를 민주당 놀이터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나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의회 독재의 또 다른 역사를 썼다. 의회 폭거의 또 다른 획을 그었다”며 “민주당이 국민의힘 발언권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 상임위 간사마저 좌지우지하며 의회를 독재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도 “의회 77주년 사상 최악의 추태가 법사위에서 벌어졌다”며 “국민의힘의 협의권을 박탈하고 빼앗는 독재”라고 반발했다.
이날 법사위에서 부결된 ‘간사 선임의 건’이 다시 상정될 수 있는지를 두고는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법 92조에는 동일 안건을 같은 회기 중에 반복해 부의할 수 없도록 하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적시돼 있다. 나 의원은 “추 위원장은 일사부재의 원칙을 얘기하며 간사 선임을 더 이상 상정할 수 없다 운운할 텐데,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국회의 ‘상원’으로 불리는 법사위에서 여야가 극한 충돌을 벌이면서 국회 운영 정상화도 더 멀어졌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