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점심시간 직후인 지난 19일 낮 12시30분 서울 여의도의 한 복합쇼핑몰 지하. 110㎡(약 33평)에 불과한 공간에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이곳에선 20~30대 고객들이 연신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점심시간대를 넘긴 1시 35분쯤에도 58명이 몰려 타닥타닥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자랜드가 이날 '더현대 서울'에 문을 연 타건샵 브랜드 세모키(세상의 모든 키보드) 팝업스토어엔 인근 20~30대 직장인들과 이곳을 찾은 쇼핑객들이 가득찼다. 팝업스토어가 문을 연 지 약 3시간 만에 200여명이 이곳을 찾은 셈이다.
이 팝업스토어는 더현대 측 제안으로 조성됐지만 전자랜드 입장에서도 젊은 소비자층과 접점을 늘릴 기회가 됐다. 조성환 SYS리테일 상품부문 PI그룹장은 "세모키는 2030세대를 타깃으로 선보인 브랜드"라며 "전자랜드는 20~30대가 많이 찾는 곳이 아니었는데 세모키를 선보이고 나서 젊은층이 많이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키보드를 사용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밀집한 여의도가 타건샵 팝업스토어를 열기엔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가전업계가 여의도를 주목하는 이유는 젊은층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소비자 반응을 통해 가전제품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층의 반응을 알면 신제품 흥행 여부를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증권사 등 기업들이 밀집한 동여의도 지역 중에서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은 더현대 서울·IFC몰이 가전업계의 대표적인 '핫플'로 꼽힌다. 이곳엔 국내외 주요 가전 브랜드 매장 20여곳이 둥지를 틀고 있다.
주요 가전 신제품이 나오면 이곳 매장에 가장 먼저 진열된다. 국내 가전 브랜드 관계자는 "신제품이 나오면 여의도 매장에 가장 먼저 깔아둔다"며 "2030세대가 많이 찾기도 하고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 신제품 초기 반응을 살피기도 좋아서 가장 빠르게 제품을 진열한다"고 말했다.
외국 브랜드들도 같은 이유로 여의도를 주목한다. 다이슨 매장 관계자도 "가전제품 트렌드를 반영하는 장소가 여의도"라며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고객들이 많이 찾고 가전제품 팝업도 많이 진행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여의도가 신작 가전의 핫플로 떠오른 덴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직장인들이 몰려 있다는 점이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가전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정보기술(IT) 기기에 친화적인 소비자층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브랜드 샤오미도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해 여의도를 오프라인 매장 첫 상륙지로 선택했다. 샤오미코리아 관계자는 "샤오미의 브랜드 정체성과 국내 타깃 소비자층을 고려해 후보 상권별 유동 인구, 상권 성장성, 브랜드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며 "고소득 직장인과 테크 소비자 유입이 활발한 여의도 복합쇼핑몰을 최적의 입지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곳에 위치한 애플스토어엔 이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찾은 직장인 등 20여명이 아이폰·아이패드·맥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다이슨 매장에도 한 30대 직장인이 최근 출시된 무선청소기 신제품을 직접 체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여의도는 재밌고 감각적인 소비경험을 원하는 MZ세대와 직장인 등 소비력을 갖춘 프리미엄 소비자를 동시에 끌어모을 수 있는 복합적인 특성이 있는 지역"이라며 "이는 가전시장에서 핵심 마케팅으로 떠오르고 있는 체험경험과 프리미엄화와도 맞닿아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성수나 홍대가 아닌 여의도를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