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가 다르다!”는 말을 우리는 너무 쉽게 사용한다. 보통은 ‘수준 차이가 난다’는 의미로 쓰지만, 사실 이 말은 매우 복잡 미묘한 함의를 지녔다. 우리 스스로 ‘계급’이나 ‘계층’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카를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라고 했다. 노예와 주인, 농노와 영주,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은 전보다 다양한 모습을 띠고 사회 곳곳에 교묘하게 자리 잡았다.
최근 독일에서는 <계급: 위와 아래의 탄생(Klasse: Die Entstehung von Oben und Unten)>이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독일 주요 언론에서 ‘철학계의 떠오르는 스타’라는 평가를 받는 하노 자우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윤리학 교수는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지위, 계급, 위계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계급이란 무엇인지, 불평등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지위와 명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계급주의가 우리의 가치관, 감정, 우정과 관계, 취향과 생활 방식, 직업과 재정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사고와 행동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전한다. 아울러 계급을 드러내거나 암시하는 ‘사회적 신호’를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다. 옷차림과 머리 모양, 말투 등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는 ‘정보 비대칭 시장’을 분석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고용시장에서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간파하고, 사람을 뽑을 때 누가 얼마나 똑똑하고 의욕적인지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을 찾으려 했다. 스펜스는 ‘학위증명서’가 이 같은 신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유명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 좋은 학점을 받았다는 학위증명서는 ‘지성과 성실함을 갖춘 인재’라는 사회적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렇게 해서 생긴 ‘학벌주의’는 여전히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계층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에이블리즘(ableism·장애인 차별)’과 ‘에이지즘(ageism·연령 차별)’ 등을 거론하며 사회 공동체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계급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을 설명한다.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실업자가 로또에 당첨돼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된다면, 그의 계급도 바뀔 수 있는가?” 책은 계급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계급은 재산(물질적 신호)만이 아니라 교육, 언어, 취향, 도덕적 태도 등과 같은 비물질적 신호로도 구성된다. 계급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일종의 ‘희소가치’이며, 다양한 사회적 신호를 통해 지위가 형성되고 유지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 구조는 끊임없는 경쟁을 유발하는 동기이자 각종 불평등의 원인으로 사회 전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책은 계급 문제를 철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통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