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4년 9월 26일, 고려군 원에 출정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4 days ago 7

장사성 초상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문영 역사작가 1354년 9월 26일, 원 순제는 승상 토크토아(脫脫)에게 여러 왕과 각 행성(行省), 해외에서 온 원군까지 통솔해 반란군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하도록 명했다. 고려군도 참여했다. 당시 원은 수재와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혹한 통치까지 겹치면서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이들의 마음을 백련교라는 신흥종교가 사로잡았다. 백련교도들은 붉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반란을 일으켜 ‘홍건적’이라 불렸다. 이들은 훗날 고려까지 침공했다. 원이 홍건적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강남 각지에서도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이는 원이 한족을 철저히 탄압했던 대가이기도 했다. 이 중 두각을 드러낸 무장으로는 후일 명을 세운 남경의 주원장을 비롯해 강서의 진우량, 소주의 장사성 등이 있었다. 장사성은 소금 장수 출신이었는데, 국호를 ‘주(周)’라 정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원은 장사성 토벌을 위해 여러 차례 군대를 보냈으나 번번이 패했다. 결국 승상 토크토아에게 대군을 맡겨 토벌에 나섰다. 토크토아는 고려에도 원군을 요청했다. 그 배경에는 재상 자리를 노린 고려의 간신 채하중이 원에 파병을 요청하도록 공작한 일이 있었다. 공민왕은 왕좌에 오를 때 토크토아의 결정적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정예군이 출정하게 돼 왕을 호위할 군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채하중은 자신의 정적들까지 원정군에 포함시켰다. 고려의 정예 기병 2000명은 수도 대도(현재의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후 현지 고려인과 병력을 합쳐 2만3000여 명으로 불어난 뒤 전선에 투입됐다. 공격 목표는 장사성이 버티고 있던 장쑤성의 고우성이었다. 고려군이 선봉에 서야 했다. 27차례나 성을 공격했다고 하니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침내 고려군이 고우성의 외성을 함락시키고 곧 내성도 함락시킬 판이었는데, 전공을 독차지하는 것을 견제한 다른 부대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이후 고려군은 육합성 탈환 작전에 나서 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승리를 눈앞에 둔 순간 전세가 뒤집혔다. 순제가 간신들의 모함을 믿고 토크토아를 해임한 것이다. 총지휘관이 사라져 지휘 체계가 흔들리자 장사성군은 반격에 나섰다. 고려군은 장사성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회안성에 투입됐다. 최영은 여러 차례 창에 찔리면서도 분전한 끝에 적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장사성은 결국 세력을 회복했다. 고려 장수들은 원의 무너진 ...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