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들고 도망친 배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객석의 카메라를 휘젓는 순간, 이를 쫓는 무리가 구호를 외치며 공연장 곳곳을 수색한다. “서치(Search)!” “아웃(Out!)”
도망자는 곧 중앙의 대형 수조 속으로 ‘풍덩’ 몸을 던진다. 관객의 시선이 무대 중앙으로 옮겨오자 물을 뚫고 하늘 위로 선박이 솟아오르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공중제비를 돌며 아파트 6층 높이에서 다이빙하는 연기자들은 눈을 의심케 한다.
이 공연은 지상 최대 수중 쇼로 불리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마카오의 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시티오브드림스에서 5년 만에 관객 앞에 다시 섰다. 이 쇼는 2010년 9월 초연 당시 ‘태양의 서커스’로 유명한 프랑코 드라곤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전 세계 관객을 매료했다. 2022년 드라곤 감독이 별세한 후 쇼의 시작을 함께한 연출가 줄리아노 페파리니가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2.0’으로 각색해 지난 5월 9일부터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 최고 올림픽 선수와 자본의 만남
공연 줄거리는 단순하다. 이방인이 바다에서 우연히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인이 사악한 여왕에게 붙잡히자 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출연진의 곡예와 다이빙, 수중 스턴트, 최첨단 무대 기술 시스템은 대사 한마디 없이도 순식간에 관객을 극에 몰입하게 한다.
지상 최대 워터쇼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쇼의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극장 중앙에 자리잡은 수영장은 폭 50m, 깊이 9m로 올림픽 수영장 5개를 합친 크기다. 이 거대한 수조를 채우는 데만 약 1400만L 물이 사용된다. 전 올림픽 다이빙 선수들이 그대로 몸을 던져 자유 낙하하는 공연장의 높이는 25m다. 아파트 6층 높이다. 전 세계 30개국에서 모인 300여 명의 출연자와 스태프가 극장 중앙 공연장과 천장, 수조 아래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어느 자리가 명당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270도 ‘원형 극장’ 형태로 로마 콜로세움을 닮아 어느 방향에서든 동일한 시각적 경험이 가능하다. 좌석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비 제공 여부다. 수조와 가까운 D열까지는 배우들이 다이빙할 때 흠뻑 젖을 수 있어 공연 전 우비를 나눠준다.
물속과 땅 위를 오가는 마법의 무대
최첨단 과학 기술이 더해진 무대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꾼다. 조금 전까지 무용수들이 군무를 펼치던 무대가 순식간에 수영장으로 변하고, 연기자들이 헤엄치던 수영장은 곧 다이빙장이 된다. 엔진 소리를 내며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이는 오토바이 스턴트 존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눈 깜짝할 사이 장르를 넘나드는 퍼포먼스 공간에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무대 표면은 미세하고 촘촘한 고무 소재의 특수 바닥재 ‘몬도(Mondo)’로 덮여 있다. 수백 개의 작은 구멍이 뚫린 몬도 아래에는 대형 유압 리프트가 11개 설치돼 있다. 공연 중 무대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중력과 압력 차이에 의해 물이 아래 수조로 빠르게 빠진다. 이 과정에서 무대 위 물이 순식간에 마르는 듯한 효과가 연출된다.
쇼가 펼쳐지는 90분 내내 장대한 시각적 환희가 펼쳐진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극대화한 배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왕에게 붙잡힌 남성 포로들은 마치 붕대에서 풀려나 추락하듯 25m 높이에서 역동적인 안무를 선보인다.
수면 위로 떠오른 정자 꼭대기에서는 오직 한 팔로 온몸을 의지한 곡예사가 고난도 동작을 연출하며 관객의 시선을 온전히 인간의 신체에 집중시킨다. 나그네가 지고 다니던 작은 상자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곡예사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며 경이로운 퍼포먼스를 펼친다. 무대 위 자유롭게 춤추는 것은 물뿐만이 아니다. 결국 주인공은 비범한 움직임으로 몸의 아름다움과 한계를 넘나드는 퍼포머들이었다.
마카오=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