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에 개막해 열흘에 걸쳐 열린 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24일에 막을 내렸다. 영화제의 가장 큰 이목이 모이는 황금종려상은 이란 출신의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그건 사고였을 뿐이었다(It was Just an Accident)>가 수상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와 웨스 앤더슨, 그리고 아리 에스터 등 유독 할리우드와 유럽의 거장 감독들의 귀환 프로젝트가 몰려 있던 이번 칸 영화제에서 파나히의 수상은 큰 반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은 황금종려상이 지닌 가치와 유산을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 출신의 감독으로 이란 정부의 탄압과 검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액티비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의 정치활동, 그리고 이란 정부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들을 공개함으로써 출국 금지와 자택 구금, 투옥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그건 사고였을 뿐이었다>는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장편 영화로 역시 이란 정부와 사법체제, 특히 무작위로 자행되는 고문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영화다. 이번 영화 역시 이란 정부의 검열을 (내용으로 짐작컨대 당연히도) 거치지 않은 작품으로 영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지만,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감독에게 가해질 제재와 이 영화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칸은 오랜 기간 동안 파나히 감독의 지지자가 되어 주었다. 특히 2011년 파나히 감독이 이란 정부에 의해 영화 연출 활동을 금지당했을 때 그가 USB 드라이브에 담아 몰래 제출한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This is Not a Film)>를 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상영하고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연대하여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번 파나히의 수상은 칸이 꾸준히 지켜오던 파나히 감독을 향한 존경이자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아티스트들에 대한 연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은 영화제의 상업적인 선택과 여성 감독에 대한 지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칸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로서 위상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주요 부문들의 수상작들로 칸 경쟁 섹션에만 세 번째로 초청된 덴마크 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감성적인 가치(Sentimental Value)>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감성적인 가치>는 과거에 유명세를 누렸던 영화감독, 거스타브(스텔란 스카스가르드)와 그의 두 딸인 노라와 아녜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거스타브의 아내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난 이후, 아버지와 딸들은 완전히 서로를 단절한 상태다. 그는 오랜만에 준비하는 영화에 배우로 활동 중인 노라를 캐스팅하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할리우드 배우, 레이첼 캠프(엘 페닝)를 추천한다. 영화는 인생과 커리어의 끝자락에 놓인 한 영화감독이 아마도 마지막이 될 작품을 통해 딸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현지 언론에서도 메이저 상의 수상을 추측하게 할 만한 평가를 받았다.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를 “'예술을 통한 치유'라는 지극히 클리쉐적일 수 있는 전제의 뛰어난 예외”라고 호평했고, BBC는 “아마도 이 영화는 2025년에 보게 될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영화일 것”이라며 극찬했다.
또 다른 주요 부문으로 최우수 각본상은 두 개의 황금종려상을 보유하고 있는 다르덴 형제의 <젊은 엄마들( Young Mothers)>이 수상했다. 사회의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삶과 일상을 꾸준히 조명해 오던 다르덴 형제는 이번 영화에서 쉼터에서 지내는 10대 미혼모들이 마주한 딜레마를 그린다. 다르덴 형제의 날카로운 리얼리즘은 그들의 필모그래피가 시작된 30년 전과 변함이 없다. 사회에서 이루어진 진보 특히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적 진보와는 상관없이 혹은 그러한 진보로 인해 저소득층과 제도권 바깥의 존재들, 예컨대 불법체류자들이나 미혼모,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그리고 더욱더 그들로서는 계급적 도약이 불가능한 미래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칸 영화제는 미학적인 성취보다는 인간과 공존, 연대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가치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 그리고 영화제가 선행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와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몇 년간 주목받아오던 한국 영화가 학생 영화 부문을 제외한 그 어떤 곳에서도 선보이지 못했다는 것은 크게 아쉬운 점이지만 그럼에도 올해 칸에서는 영화와 영화제가 공유할 수 있는 미덕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런 가치와 미덕은 현재 한국 영화가 결핍하고 있는, 혹은 상기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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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