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20년 넘게 OCED 국가 자살률 1위 오명
4차례 자살예방계획 모두 목표달성 실패
전문가 “통계부터 확보하고 전략 짜야”
정부가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각종 국가자살예방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새로 발표된 전략도 기존 정책을 되풀이한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진단’이 필요한데, 진단 없이 기존에 나왔던 대책만 모아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자살자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통계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제9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열고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의결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10년 내 해결하고, 매년 1만명이 넘는 자살 사망자 수를 5년 내 1만명 아래로 줄이기 위해서다. 위원회는 자살률을 2029년 10만명당 19.4명으로 떨어뜨린 뒤 2034년에는 17명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히고 있다.
이날 김 총리는 “발표된 정책이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위원회뿐만 아니라 자살예방을 위한 범부처 추진본부를 설치해 집중력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이어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 자살률은 26.2명으로 OECD 표준인구 10만명당 자살률 평균치(10.8명)의 2배를 넘어섰다. 자살률 2위인 리투아니아(18명)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경제 규모가 유사한 국가과 비교해도 한국 자살률은 높은 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총생산(GDP) 규모 12위인 스페인과 14위인 호주는 자살률이 각각 OECD 국가 중 29위와 10위를 기록했다. 국가의 경제 규모와 자살 문제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최근 몇 년 새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규정되는 자살률은 2022년엔 10만명당 25.2명, 2023년엔 27.3명, 2024년 29.1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자살률은 전년보다 6.6% 올라 2011년(31.7명)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절대적인 자살 사망자 수도 지난해 1만4872명으로 전년보다 6.4% 늘어 2011년 이후 최다를 기록했다.
자살률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자 정부도 경각심을 가지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자살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기존에 나왔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고, 부처별 정책을 단순히 한데 모아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2004년부터 5년 간격으로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만들고 정책계획을 수립했지만 1~4차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정책목표를 달성한 바가 없다.
가령 4차 계획 목표치는 이번에 발표된 목표치와 같은 10만명당 17명(목표 연도 2022년)이었으나 달성되지 않았다. 1차 18.2명(2008년), 2차 20명(2013년), 3차 20명(2020년)도 마찬가지였다. 5차 자살예방기본계획 목표치는 18.2명(목표 연도 2027년)이지만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자살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실태조사가 없어 구체적인 원인 진단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자살 원인에 대한 통계가 부족하다 보니 원인 분석도 어렵고 이에 따른 정책 수립도 쉽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해마다 비슷한 대책만 반복되며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자살과 관련된 원인, 동기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아직 활용 가능한 통계나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도 문제에 대한 원인 파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