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 씨(43)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가격표를 다시 확인했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쓸 돼지고기 목살을 사러 왔지만 가격을 보고선 제품을 들었다가 내려놨다가를 반복했다. 이날 김 씨가 방문한 마트에서 돼지고기 목살 가격은 100g당 2880원. 김 씨는 “네 가족이 먹을 양을 끓이려면 2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돼지고기 김치찌개 대신 참치 캔을 넣고 찌개를 끓여야하나 싶다”고 푸념했다. 이어 “요새는 장을 한 번 보면 기본 10만 원 훌쩍 넘는다”며 “식비를 최대한 줄여보려고 하지만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라 쉽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서민 장바구니 물가에 빨간불이 켜졌다. 식품·외식업계가 앞다퉈 가격을 인상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 이달 3일 조기 대선 직전까지 가공식품 가격을 올린 기업들만 60곳 이상이다. 환율과 미중 관세전쟁 탓에 먹거리 물가 오름세가 계속된 탓도 크다. 최우선 민생 과제로 ‘물가 안정’이 거론되는 이유다.
"필수재 외엔 안 사"
8일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2020년=100)로 1년 전보다 1.9% 올랐다. 1%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이후 다섯 달 만이다. 지난 넉 달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에서 오르내렸지만,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체 물가가 소폭 하락했다.
다만 먹거리 물가는 들썩거렸다. 특히 축산물이 6.2% 뛰면서 2022년 6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라 전체 물가를 0.15% 포인트 끌어올렸다. 돼지고기(8.4%)와 국산쇠고기(5.3%), 수입쇠고기(5.4%), 계란(3.8%) 등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수산물도 6.0% 올랐다. 서비스 물가 가운데 외식 개인서비스도 3.2% 올랐다. 가공식품도 4.1% 뛰어 전체 물가를 0.35% 포인트 끌어올렸다.
소비자들은 필수재 이외에는 지갑을 닫고 있다. 서울 갈현동에 거주하는 60대 주부 박 모씨는 “요즘은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절대 사지 않는다”며 “장도 두 가족이 먹을 양 만큼만 최소한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자신의 소비 패턴을 ‘생존 소비’라고 칭했다. 전날 방문한 매장 곳곳에는 ‘밥상 물가 안정’ 할인 행사를 알리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지만. 선뜻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는 소비자는 많지 았았다. 마트 직원 윤모 씨(47)는 “할인을 해도 가격 자체가 워낙 올라 체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내수 살릴 대책 필요"
시장에서는 새 정부 대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임대료 지원, 세제 혜택, 금융 지원 등 소비 심리 회복과 유통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다만 단기 할인이나 쿠폰 발행, 이벤트만으로는 체감 부담을 낮추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보다 강력한 세제 혜택과 관세 협상, 농축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소비 지원책이 거론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 정부에선 추경 등으로 민생 경제 회복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수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것도 물가 하락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도 "정부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 거는 민생 정책은 발표만 해도 소비 심리에 영향을 주고 그 소비 심리에 의해서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면이 있다"고 조언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인 이벤트보다는 코로나19, 고금리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들을 선별 지원해, 단순히 이자 탕감 등의 조치에서 나아가 회생을 위한 직업 훈련 등 다양한 패키지를 준비해 소비 여력 자체를 끌어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소득을 늘리려면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되고 성장률이 높아져야 한다"면서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소비 거래 구조변화 인식하고 바꿔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