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ICT 석좌교수 지난해 우리는 통신 3사부터 유통, 카드에 이르기까지 유례없는 침해사고를 겪었다. 정부의 대응도 빨랐다. 범부처 정보보호 종합대책이 나왔고, 정보통신망법이 전면 개정돼 정부가 기업 신고 없이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화이트해커와 협력하는 취약점 신고·공개 제도가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설치형 보안 소프트웨어(SW)는 단계적으로 걷어내기로 했다. 제도는 분명히 촘촘해졌다. 하지만 올해도 사고는 이어진다. 지난 3월에는 국가 배후 해킹조직이 국내 워터링홀 공격에 AnySign4PC 취약점을 이용해 원격코드 실행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공공기관과 금융권 사이트를 쓰려면 설치해야 하는 공동인증서용 프로그램이다. 6월 긴급 업데이트 권고가 나갔는데, 같은 제품군에는 지난해 3월에도 권고가 나왔다. 정부가 없애겠다고 선언한 프로그램이 여전히 국민의 PC에 깔려 있고, 공격자는 우리보다 먼저 취약점을 찾아 썼다. 대책이 듣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에 뚫린 사실이 이제야 드러나는 것일까. 정직하게 말하면 알 수 없다. 우리가 발표하는 지표는 침해사고 신고 건수인데, 정책이 성공해도 이 숫자는 늘고, 신고 의무를 강화해도 늘어난다. 사고 시점과 인지 시점은 몇 년씩 벌어져 있다. 462만건이 유출된 공공 서비스는 1년 반 동안 유출 사실을 몰랐고, 경찰이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 우연히 찾아냈다. ◇제로데이만이 문제는 아니다 건수는 해석이 갈려도 원인은 갈리지 않는다. 올해 사고들의 원인을 보면 소스코드에 암호화 없이 박혀 있던 접속키, 2년 전 모의해킹에서 이미 지적됐으나 방치된 취약점, 웹 취약점, 여러 대기업이 함께 쓰는 협력사 구매 시스템의 결함이다.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미리 알 수 있었던 문제다. 지금 정부 대책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한다. 인공지능(AI)이 취약점을 대량으로 찾아내는 시대가 열렸고, 취약점 관리센터가 문을 열었으며, 사이버보안 특화 AI 모델 개발이 이번 달 시작됐다. 방향 자체는 옳다. 새로운 취약점은 실제로 위협이고, 협력사 SW를 거쳐 들어오는 경로처럼 외부에서 시작해 내부로 침투하는 공격도 있다. 다만 우리 현실에서는 입구가 한 번 열리고 나면 새로운 취약점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버전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운용체계(OS)를 올리려면 서비스를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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