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석에 앉아 오랑캐 포로들을 지휘하리.
남풍이 먼지 쓸 듯 오랑캐를 잠재우고,
이 몸 서쪽으로 장안 황제 곁으로 나아가리라.(試借君王玉馬鞭, 指揮戎虜坐瓊筵. 南風一掃胡塵靜, 西入長安到日邊.)
―‘영왕의 동쪽 순행을 찬양하다(영왕동순가·永王東巡歌)’ 제11수 이백(李白·701∼762)
공명심 때문에 생애 최대의 오욕(汚辱)을 맛본 이백의 쓰라린 경험. 안사의 난 시기, 시인은 영왕(永王) 이린(李燐)의 막료로 들어간다. 현종의 비서직에서 쫓겨난 지 12년 만에 얻은 벼슬이었다. 여산(廬山)에 은거하며 출사를 꿈꾸던 그로서는 더없이 매력적인 기회였을 것이다. 영왕을 수행하면서 시인은 11수의 연작시를 지어 군대의 위용과 충군(忠君)의 의지를 과시한다. 이 시에서 이백은 왕이 자신에게 지휘권을 맡긴다면 오랑캐 출신의 반란군을 단숨에 평정하고 황궁으로 귀환하리라 장담한다. ‘연회석에 앉아’ 지휘권을 행사하겠다니 아직 전선(戰線)에 투입되진 않은 듯한데 전공(戰功)을 수립하겠다는 기세만은 등등하다. 하나 현실은 출정가의 기세와는 딴판이었다. 당시 조정은 영왕이 황명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군대를 통솔했다는 죄목으로 이미 토벌령을 내린 상태였다. 하루아침에 시인은 관군에서 반란군으로 전락했고, 간신히 사형만은 면하고 유배형을 받았다. 두 달 남짓의 막료 생활이 안긴 치욕스러운 대가였다. 아내의 완강한 만류를 뿌리치고 영왕 휘하로 들어갔던 시인, 영왕의 역심을 예견하지 못한 자신의 단견을 얼마나 자책했을까.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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