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경제부 차장 1971년 봄이었다.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 기공식이 열렸다. 그해 11월 원자로 건설에 들어갔고, 1978년 4월 상업 운전을 시작하면서 한국 원전 역사의 첫 장이 열렸다. 1970년대 지어진 원전은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원동력이었다.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됐지만 전력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공장을 돌리고 싶어도 전기가 부족했고, 잦은 정전은 산업화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국가 전략이었던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선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원이 필요했고, 원자력 발전은 초고속 성장의 발판이 됐다. 원전 기술이 없던 한국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괄 수행하는 턴키 방식으로 고리 1호기를 들여 왔다.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건설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주계약자이자 갑(甲)이었고, 원천기술을 전수받는 입장이었던 한국은 철저한 을(乙)이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지금, 역사의 장면이 뒤집히고 있다. 미국 본토에 한국형 원전이 들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원전 건설 능력을 갖춘 한국을 미국이 핵심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한미 양국은 미국에 원전 8기를 건설하는 1200억 달러(약 161조 원) 규모 프로젝트를 협의 중인데 이 가운데 최소 2기는 한국형 노형(爐型)인 APR1400으로 짓는 데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협상이 현실화한다면 의미는 각별하다. 미국 본토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발전시킨 원전 기술이 들어서는 첫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 한국형 원전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원자로를 수출하는 차원이 아니다. 한국의 원전 설계와 기자재 공급망, 시공 능력, 프로젝트 관리와 운영 경험을 통째로 세계 최대 시장에 이식하는 일이다. 50여 년 전 원전 기술을 빌려 오던 나라가 이제 원전 산업 생태계를 수출하는 나라로 올라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해체 절차에 들어간 고리 1호기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1978년 처음 켜진 원자로의 불빛이 아니다. 그 불빛을 보고 배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핵심 기술을 독자화하고 설계해 마침내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산업으로 일궈냈다는 사실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미국은 여전히 웨스팅하우스 노형인 AP1000을 선호하고 있다. 사업 주도권과 투자 위험의 ...
[광화문에서/박민우]55년 서사 쌓인 K원전의 미국행… 대체불가 파트너 자리 굳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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