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사회부 차장 오래된 짐을 정리하다 수습기자 시절 취재 수첩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중 한 권에 2011년 가을의 사건 하나가 적혀 있었다. 서울의 한 가게 주인이 얼굴과 머리, 목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경찰은 타살에 무게를 두고 인근에 수사본부를 차렸다. 취재를 위해 비타500을 한 박스 사 들고 수사본부 문을 두드린 기억이 난다. 한 달쯤 지나도록 별 진척이 없다고 난감해하던 형사들은 자해 쪽으로 결론이 기울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 얘기를 그대로 선배에게 보고했다가 “그럴 리가 있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런데 며칠 뒤 경찰은 실제로 ‘자해로 인한 과다 출혈’이라는 결론을 공식 발표했다. 고인이 지병으로 몸에 마비가 오자 이를 풀려고 스스로를 찌르다 정맥을 잘못 건드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거였다. 당초 타살의 정황으로 봤던 것들은 고스란히 ‘혐의 없음’의 근거로 뒤바뀌어 있었다. 수십 번 찔린 상처는 ‘스스로 찔렀을 가능성’으로, 왕래가 드물었던 삶은 ‘원한 관계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 결론이 진실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고인은 이혼 후 가족과 왕래가 끊겼던 터라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지인도 없었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최근 제주에서 실종 신고가 허위로 종결된 사건을 보며 그 수첩이 떠올랐다. 제주서부경찰서 실종수사팀 부모 경장(34)은 장모 씨(37)가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은 지 두 시간여 만에 “연락이 닿았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면서도 사유는 ‘교통사고 사망’으로 적었다. 명백한 허위였다. 하지만 석 달 넘게 지휘 라인 누구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진상은 장 씨 가족이 다른 경찰서를 찾아가 재차 신고한 뒤에야 드러났다. 만약 이의를 제기한 가족마저 없었다면 부 경장의 거짓말은 지금도 시스템 어딘가에 정당한 종결로 기록된 채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수습기자 수첩에 기록한 사건 수백 건 중에서 기사화한 건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애초에 수첩에 오른 사건도 빙산의 일각이다. 경찰이 한 해 접수해 처리하는 사건은 300만 건이 넘는다. 그 모든 사건이 성실한 수사와 엄정한 검토를 거쳐 합당하게 결론이 났을까. 13만 경찰 중 부 경장처럼 태만한 사람이 단 1명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가족도 없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고, 다시 들여다볼 장치도 없다면 담당 경찰관이 적은 한 줄은 영원히 ‘정상적으로 종결된 사건’으로 남는다. 앞으...
[광화문에서/조건희]낡은 수첩 속 종결사건들, ‘제2의 제주 사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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