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갑옷을 입다[이준식의 한시 한 수]〈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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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와 구월 초여드렛날이 되면,내 국화 피어난 뒤 온갖 꽃 시들리라.하늘 찌를 그 향기 장안을 뒤덮고,온 성 가득 황금 갑옷 둘러 입으리.(待到秋來九月八, 我花開後百花殺. 衝天香陣透長安, 滿城盡帶黃金甲.)―‘과거 낙방 후 국화를 읊다(부제후부국·不第後賦菊)’ 황소(黃巢·약 820∼884)황소가 본 국화는 꽃이라기보다 군대에 가까웠다. 국화를 소재로 이 시를 지은 건 그가 과거에 낙방한 후였다. 그런데 그의 국화는 도연명의 울타리 아래 피던 고고한 꽃과 사뭇 다르다. 가을이 오면 자기 꽃이 피고 다른 꽃들은 모두 사그라진다. 향기는 은은하게 풍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을 찌르고 장안을 뒤덮는다. 마지막에는 온 성의 국화가 황금빛 갑옷을 입는다. 꽃구경이라기보다 군대의 열병식에 가깝다. 특히 ‘내 꽃’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국화를 예사로운 꽃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예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백화가 지고 국화만 남는 풍경도 자연의 순환을 넘어, 때가 오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읽힌다. 향기를 ‘진(陣)’이라 하고 노란 꽃잎을 ‘황금 갑옷’으로 본 순간, 국화는 더 이상 은자의 꽃이 아니다. 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이미 전투복을 입었다. 가히 황소 특유의 전투적 상상력이라 할 만하다. 훗날 황소는 실제로 반란을 일으켜 장안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 시를 그의 미래를 예고한 선언처럼 읽기도 한다. 물론 한 편의 시가 역사를 미리 썼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낙방생 황소의 눈에는 국화조차 얌전히 피는 꽃이 아니었다. 과거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그의 상상 속 국화는 이미 장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준식의 한시 한 수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오늘과 내일 이준식의 한시 한 수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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