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명이 흐르는 배양기, 현대판 용광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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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명이 흐르는 배양기, 현대판 용광로다

노동조합법 38조 2항은 쟁의행위 중에도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의 부패·변질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 즉 보안 작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거대한 고로를 식힐 수 없었던 중화학 공업 시대에 뿌리를 둔 이 조항의 입법 취지는 명확하다. 쟁의행위의 본질은 노동력을 소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사용자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지, 사용자의 물적 시설을 파괴하거나 원료를 썩게 해 기업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다는 선언이다.

필자는 여기서 묻고 싶다. 한 번 멈추면 수개월의 노력과 살아있는 생명체가 사멸하는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배양기가 곧 현대판 ‘용광로’가 아닐지. 그간 노동계 일각에서는 보안 작업의 범위를 극히 보수적으로 해석해 조업 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본질적인 쟁의 비용으로서 사용자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기술도 바뀌었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은 30년 전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방식으로 작동한다. 세포주 해동부터 배양, 정제, 충전까지 공정이 수십 일에 걸쳐 연속적으로 이뤄진다. 도중에 멈추면 만들던 제품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 세포를 배양하고 항체를 추출하는 과정은 화학 반응이 아니라 ‘생명 현상’ 그 자체다. 바이오산업에서 공정이 중단되면 단순한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작업 시설의 핵심 기능이 물리적으로 파괴되고 만다.

필자는 노동법 학자로서 쟁의권의 가치를 누구보다 존중한다고 자부한다. 쟁의권은 ‘일시적 멈춤’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권리이지, 파업이 끝난 뒤 노사가 함께 돌아갈 ‘일터의 기반’ 자체를 잿더미로 만들라는 게 아니다. 쇳물이 굳어버린 용광로를 다시 살리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 듯, 오염되거나 사멸한 바이오 배양기를 복구하는 것 역시 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치명적 타격이다. 노조법상 보안 작업이라는 개념은 극단적 대립 속에서도 노사가 공유하는 최소한의 ‘물적 토대’를 남겨두라는 법의 명령이다.

노동법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의 산업 구조를 반영하는 유연한 그릇이어야 한다. 사법부와 노동위원회는 보안 작업에 대한 구시대적 해석의 틀을 깨야 한다. 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배양 공정의 유지와 관리는 노조법 38조 2항이 금지하는 ‘시설 손상 및 원료 부패 방지’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정되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노동자에게 파업 종료 후 즉시 복귀할 수 있는 직장을 보장하고 환자에게는 필수 의약품 공급망이 끊기지 않는다는 사회적 신뢰를 심어주는 길이다.

기술 진보는 법 해석의 진보를 요구한다. 바이오 공정을 보안 작업 범주에 포함하는 것은 쟁의권 침해가 아니라, 변화한 산업 환경에서 쟁의권이 책임 있게 행사될 수 있도록 정당한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노사 공멸 대신 생명공학의 역동성을 지키며 상생할 수 있는 법적 지지대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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