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정동진과 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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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정동진과 산수연

금요일의 바다는 차고 맑았다. 꽃나무들은 체온을 낮춰 꽃이 피는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4월의 꽃그늘이 호젓하다. 동해가 안개를 둘러 표정을 가리는 동안 파도 소리가 봄 산에 넘실거린다. 아버지는 날이 흐릴수록 꽃을 보라고 했다. 정동진역 앞에 서 있는 부모님을 발견하자마자 깨달았다. 두 분의 얼굴이 봄볕처럼 그리웠다는 걸. 아버지 손에는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가 들려 있었다. 먼 길 오시는 데 짐이 될까 봐 전화로 몇 번이나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방지턱을 넘을 때처럼 울컥 쏟아진다. 서둘러 짐을 받아 들며 속이 상해 괜히 타박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랬잖아!”

“엉게나물하고 참나물 조금….”

박스째로 챙기고도 모자랐나 보다. 팔순을 맞은 아버지를 축하하는 자리를 앞두고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포항에서 회를 떠 갈까, 문어를 삶아 갈까 물어왔었다. 그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막상 내가 준비한 것들을 보는데 한숨이 나왔다. 축하 꽃바구니도 주문하고 용돈도 마련해 뒀지만, 앙금 꽃을 한 아름 피워낸 케이크를 차에 실으며 생각했다. 케이크 판에 남긴 문구가 너무 뻔해 보인다고. 피는 꽃과 지는 꽃 사이에서 후회가 밀려들 즈음 호텔에 도착했다.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정동진역’ 김영남) 가까운 곳에 이런 멋진 외관을 한 호텔이 있다니, 내려다보이는 바다도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거닐며 곳곳에서 감탄했다. 저렇게 좋을까.

“아빠는 아직도 세상에 놀랄 일이 많은가 봐.”

“사실, 여기 참 궁금했거든. 배가 왜 저기 있나 했는데, 딸들 덕분에 여길 다 와보네. 호강한다.”

오후 3시 바다가 출렁대며 내 부끄러운 귀를 친다. 그렇게 좋은 데도 아닌데 호강이라니. 어려운 일도 아닌데 입때껏 그걸 못 해 드렸다. 몇 안 되는 가족이 모여 케이크에 초를 켜고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에게 최고의 아버지상이라고 적힌 상패와 비단으로 감싼 상금도 드렸다. 그리고 부모님의 용돈과 편지를 받았다.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까마득한 시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잊지 말라는 듯 다시금 용돈을 주신다. 이른 봄에 ‘나물 팔은 돈’을 탈탈 털어 가장 고운 봉투에 담았으리라. 나는 용돈이 아니라 엄마가 봄에 걸었던 따스한 들길을 생각했다. 제비 아랫배처럼 흰 바람을 맞아가면서 밭둑을 밀고 올라오는 엄나무 순과 다래 순, 대파와 냉이까지. 편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부모 마음은 늘 하나란다. 너희가 건강하고 부부간에 화목하고 서진이 잘 키우며 사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효도다.” 바라는 것 없이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만 가득한 편지였다. 그날 밤 나는 개구리처럼 쉬이 잠들지 못했다. 노쇠해져 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가만가만 바라보니 이제는 흔한 말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아버지의 귀는 보청기를 껴도 우리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대부분 놓치기 일쑤다. 아버지는 귀가 어두워지고 나서야 ‘귀담아듣는다’는 말을 이해했다고 했다. 그릇에 국을 퍼 담듯 말을 잘 담지 않으면 귀가 말을 다 흘려버린다고 했다.

팔순의 나이를 껴안고 초당두부집에서 점심값을 계산하려고 하고, 레일바이크값까지 계산하려는 아버지 마음이 크고 둥근 수양버들 같았다. 그 그늘 속에서 1박2일 동안, 행복했다. 아버지는 덜 갖고 더 많이 사랑하는 일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래, 삶이란 더 가지는 일이 아니라 덜 갖는 마음을 갖는 일인가 보다. 못 보고 못 듣는 게 아니라 덜 보고 덜 들어도 그것이 희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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