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통찰력 있게 느껴졌던 기업인 인터뷰는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의 경우다. 무뇨스 사장은 이달 초 미국 블룸버그와의 대담에서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다. 그것도 완전히 끝났다(fully over)”고 했다. 글로벌 부품 공급망의 대혼란을 두고 한 말이다.
현대차가 한국에서 생산한 핵심 부품을 유럽 공장으로 보낼 때는 홍해의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것이 최단 항로다. 그러나 후티 반군의 무력 행사 탓에 수에즈를 포기하고 불가피하게 장장 9000㎞를 돌아가는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를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송 기간이 열흘 이상 지연되는 것은 물론 선박 연료비, 보험료 등에서 엄청난 비용이 가중된다. 이렇게 되면 제품 설계에서부터 원자재 및 부품 조달, 조립, AS까지 비교 우위에 입각한 최적의 효율성 조합, 곧 ‘세계화’가 무의미해진다.
무뇨스에 앞서 세계화의 퇴장을 예고한 세계적 경영인이 있다. 대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이다. 2022년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공장 기공식에서 그는 “세계화는 거의 죽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그의 연설 내용보다 TSMC 애리조나 칩을 쓰겠다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말에만 주목했다. 모리스 창으로선 경제 논리상 애리조나에 공장을 지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만과 비교했을 때 공장 건립 비용은 4~5배, 칩 생산 비용은 50%나 높다. 잘 아는 대로 지정학적 대가다. 그는 이후 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세계화는 완전히 죽었다”고 단언했다.
무뇨스와 모리스 창이 공통으로 쓴 표현은 세계화의 ‘완전한’ 사망이다. 세계화의 종식은 자유 무역, 상호 의존, 국제 분업의 글로벌 공급망 붕괴를 의미한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때 그 단초를 봤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티 반군의 홍해 사태로 심각성이 더해지다가 이번 미국·이란 전쟁은 공급망 쇼크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변수는 상황이 종료되면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계화가 완전히 죽었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사그라지지 않을 리스크가 상수로 남아 있어서다. 미·중 패권전쟁이다.
세계화의 기폭제가 된 건 미국 현대사의 최대 오판이라고 하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허용이다. 이때 중국의 전략이 도광양회다. 기실 도광양회의 요체는 반칙을 일삼으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공산당식 전략 전술이다. 중국은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해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면서, 숨어서는 베끼고 훔치고 인권·환경 등 보편 가치는 철저히 무시해 가면서 경제 역량을 축적했다. 자유 진영은 저가와 풍요의 단맛에 취해 후일 비수로 돌아올 것까지 죄다 내줬다.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던 미국은 빌 클린턴 정부 때 환경단체의 압박에 못 이겨 희토류 광산을 전면 폐쇄했다. 중국산 요소를 수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던 한국은 요소 공장이 모두 문 닫은 바람에 요소수 사태를 겪어야만 했다.
세계화가 저물어가는 지금, 무역은 ‘자유’가 아니라 ‘안보’의 옷을 입고 있다. 군비 확충의 냉전 때보다 충돌이 더 일상화될 수 있는 게 경제전쟁의 신냉전이다. 첨단기술과 더불어 에너지·자원이 필살기가 되는 시대, 우리 사회 주체들에겐 각각의 당면과제가 있다.
이번 이란 전쟁으로도 입증됐듯 우리는 세계에서 공급망 구조가 가장 취약한 나라다. 정부, 기업, 대학 등을 망라하는 국가적 컨트롤타워 설립이 시급하다. 중국 희토류 타격에 보름 만에 백기 투항한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은 세계 최초로 경제안보장관을 뒀다. 1, 2대 경제안보상이 현 자민당 실세인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조회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다.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지난한 과제를 안게 됐다. 닛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무뇨스조차 “지금만큼 힘든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이럴 때 노동, 환경 규제로 기업을 옥죄는 것은 국가가 기업의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격이다. 국민의 마음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세계화의 종식은 우리가 더 불편하고, 더 비싼 값을 치르며 살아야 함을 뜻한다. 한겨울엔 집안에서 러닝에 팬티 바람으로 지내고, 여름엔 냉방병이 유행하는 선진국은 한국밖에 없다. 이란 전쟁의 공급망 여파는 앞으로 다가올 더 큰 고통의 서막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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