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맥스·슈프리마·우리기술·바텍…벤처 37곳 배출한 '창업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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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맥스, 슈프리마, 파인디지털, 우리기술, 바텍….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이들 회사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동화 제어 이론의 세계적 석학인 권욱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의 제자들이 창업했다는 점이다. 서울대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의 2대 소장을 지낸 권 명예교수는 서울대 동문들 사이에서 ‘대한민국 벤처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창업과 기술사업화에 앞장섰다. 김현진 서울대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장은 6일 “권 교수는 연구에만 매몰된 기존 대학의 관습을 넘어 제자들에게 창업의 중요성을 심어줬다”며 “우리 연구소가 1세대 벤처인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1980년대부터 창업에 도전

휴맥스·슈프리마·우리기술·바텍…벤처 37곳 배출한 '창업사관학교'

서울대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는 국내 대학 내 창업 생태계의 원형이자 ‘창업사관학교’로 불린다. 벤처 열풍이 불기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창업의 요람 역할을 했다. 연구소의 기틀을 마련한 권 명예교수는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의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하고 제자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장했다. 이른바 ‘권욱현 사단’으로 불리는 그의 제자들이 ‘논문만 쓰는 학자’라는 틀을 깨고 기술사업화의 최전선인 창업에 뛰어든 이유다. 김 소장은 “연구소는 공간과 인력, 장비, 시설, 선배 교수들의 노하우 전수 등을 통해 이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벤처 팜’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벤처기업이란 말 자체가 없었을뿐더러 대학 졸업이 취업을 보장하던 시기였던 만큼 서울대 출신이 창업한다고 하면 뜯어말렸다. 하지만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가 배출한 1호 벤처기업인 휴맥스의 변대규 대표가 1989년 창업의 물꼬를 트면서 창업이 이어졌다.

원자력발전소의 감시·경보·제어 시스템을 독자 기술로 개발한 우리기술의 창업자 김덕우 전 대표를 비롯해 지문인식과 물리보안 기업 슈프리마의 이재원 회장, 내비게이션업체 파인디지털의 김용훈 대표, 계측장비 및 의료용 디지털장비 전문업체 바텍을 창립한 임성훈 전 대표 등 굴지의 벤처기업 창업자도 모두 권 명예교수의 제자들이다. 김 소장은 “연구소가 배출한 코스닥 상장사 및 글로벌 벤처기업이 37개”라며 “이 기업들의 연매출 총합은 2조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정부도 대학 창업 모범으로 주목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가 주도하는 벤처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히고 있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곳은 비전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스누아이랩이다. 이 기업은 서울대 AI 전공 교수 6명, 서울대 기술지주, 삼성 출신 연구원들이 공동 설립한 딥테크 스타트업이다. 일본 물류 자동화 기업 다이후쿠, 독일 검사장비업체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스누아이랩의 대표 제품인 ‘오토케어’ 플랫폼은 시각언어모델(VLM) 기반 비전 검사 자동화 플랫폼이다. 핵심 AI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에 검사 자동화가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던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했다. 스누아이랩은 내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컴퓨터 시스템·서버 아키텍처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2022년 창업한 망고부스트도 연구소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개발한 데이터처리가속기(DPU)는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시스템 운영 시 사용되는 서버의 과부하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메모리를 통합해 전력 효율과 데이터 처리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AI 추론 성능 테스트 ‘MLPerf Inference’에서 엔비디아를 제치며 주목받았다. 업계에선 한국에서 기술적으로 인정받는 DPU 개발사는 망고부스트뿐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DPU 시장은 이제 막 태동한 까닭에 세계적으로도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엔비디아, AMD, 인텔,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대여섯 곳에 불과하다. 김 소장은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잡도록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벤처 붐이 다시 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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