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는 ‘창작 두뇌’와 ‘연산 엔진’이라는 두 축에서 인공지능(AI)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한보형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이끄는 컴퓨터비전연구실은 별도 학습 없이 무한 길이의 동영상을 생성할 수 있는 AI 추론 모델인 ‘피포 디퓨전’을 개발했다. 기존 비디오 생성 모델은 몇 초 정도의 짧은 영상만 만들 수 있었다. 영상이 길어질수록 이전 프레임을 모두 기억해야 해 메모리 사용량이 급증하고 프레임 간 일관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피포 디퓨전은 과거 프레임을 저장하지 않고 일정 수의 최근 프레임만 기억하는 ‘선입선출(FIFO)’ 방식을 도입했다. 새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가장 오래된 프레임은 삭제하고 최신 프레임만 남기는 식이다. 마치 오래된 사진은 지우고 새 사진만 남기는 카메라처럼 이 방식은 메모리 사용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긴 영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광고, 게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상 제작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교수는 “콘텐츠산업의 판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컴퓨터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이온트랩 기반 양자컴퓨터 시스템의 핵심 요소를 자체 개발하며 고전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계산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비트를 대신해 큐비트라는 단위를 이용해 여러 계산을 동시에 수행한다. 연구팀은 특정 원소의 이온을 전기장으로 정밀하게 포획하고 레이저로 제어하는 이온트랩 방식을 채택해 높은 정밀도와 긴 양자 상태 유지 시간을 갖는 시스템을 제작 중이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중첩’이라는 물리 현상을 이용해 특정 문제를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며, 일부 계산에서는 자원 효율성 면에서도 우위를 지닌다. 하지만 이런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선 풀기 어려운 숙제가 하나 있다. 양자 오류 억제, 쉽게 말해 큐비트의 상태를 흐트러뜨리는 ‘잡음’을 줄이는 일이다. 김 교수는 수술실에서 손을 떠는 외과의사에 비유했다. 그는 “양자컴퓨터를 구동하는 건 마이크로파나 레이저 같은 매우 정밀한 신호”라며 “이게 조금만 흔들려도 생명을 다루는 외과의사가 손을 떠는 것처럼 큐비트가 망가진다”고 설명했다. 극도의 정밀성이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큐비트를 이리저리 옮기는 셔틀링도 마찬가지다. 마치 달걀을 쌓아놓고 옮기는 일과 같아서 조금만 흔들려도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제어 기술의 정교함이 핵심이다. 김 교수 팀은 올여름까지 다른 연구자들도 외부에서 접속해 사용 가능한 수준의 5큐비트 이온트랩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