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메켈레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임윤찬. 환상의 드림팀이 여름 투어 프로그램의 첫 테이프를 파리에서 끊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풍부한 잔향 속을 누비던 고밀도 사운드가 박진감 넘치는 흥분과 뒤섞여 벅찬 환희로 이어지던 지난 5일 밤, 그 생생한 현장을 스케치했다.
세련된 색채감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은 라벨이 얼마만큼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였는지를 새삼 상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메켈레와 파리 오케스트라는 세련된 색채감의 대조를 명확하게 살리는데 표현의 중점을 두었다. 서주에서 산만함이 감지되어 약간 불안정하기는 했으나, 메켈레는 곧 소리의 흐름을 정돈해 청중의 귀를 집중시키고, 목관과 현악 파트 간의 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라벨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의 진가를 십분 살렸다.
기교, 밀도, 섬세함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하 라피협) 4번은, 그의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2번과 3번 협주곡의 그늘에 가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다. 첫 작품 구상은 1917년 러시아에서 이루어졌지만, 작곡가 망명 이후 뉴욕에서 다듬어졌고 1926년 드레스덴에서 완성된 작품인 만큼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에 재즈의 영향이 가미된 독특한 정서를 담고 있다.
임윤찬은 무대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관객을 향해 인사를 마치자마자 막바로 슈타인웨이로 달려들었다. 1악장 Allegro Vivace에서 짤막한 오케스트라 서주를 듣고는 이내 기선 제압하듯 건반 위를 달리던 민첩한 피아니스트의 열정을 오케스트라가 따라잡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사운드가 살짝 지체됨을 감지한 클라우스 메켈레는 곧 다이내믹과 템포를 조정하며 음악적 흐름을 원활한 안정 궤도로 끌어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슈타인웨이의 소리가 차차 열리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피아노가 젊은 조련사의 마법 같은 손에 의해 깨어나는 것을 연상시켰다. 때로는 거칠고 날렵한 터치로 채찍질하듯 건반을 할퀴며 본능적인 숨결을 깨우기도 했고, 때로는 피아니시모의 속삭임으로 감미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Largo악장은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해석으로 다가왔다. 임윤찬의 터치는 '제어된 즉흥성'으로 재즈적인 어조를 살짝 드러내며 자유로운 호흡으로 음악을 이끌었다. 그는 마치 긴 숨결 같은 프레이징으로 다른 악기들의 솔로 파트를 어루만졌고, 목관의 독주가 돋보이는 부분에서는 뒤로 물러서며 섬세하게 서포트하는 반주자가 되기도 했다. 시종일관 메켈레와 오케스트라를 주시하면서 균형적인 소통에 신경을 쓰면서도, 무심한 듯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는 여유를 드러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느린 악장의 꿈결 같은 분위기도 잠시, 마지막 악장 Allegro vivace가 폭발적 에너지로 전율을 일으켰다. 클라우스 메켈레는 단원들과의 눈빛 교환, 정감 어린 제스처, 패기 넘치는 지휘봉으로 파리 오케스트라와 임윤찬과 삼위일체가 되었다.
거친 숨결로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던 임윤찬의 라피협 4번은, 객석을 진정한 음악적 황홀경으로 몰고 갔고, 이는 1957년 에토레 그라치스(Ettore Gracis)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한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의 전설적인 연주를 떠올리게 했다. 미켈란젤리가 라피협 4번의 20세기 해석의 기준을 세웠다면, 임윤찬의 이번 라피협 4번은 자신만의 비전이 담긴 21세기 해석의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스무 살의 임윤찬은 본능적 직관으로 즉흥적인 감흥을 솔직하게 표현했으며, 이점은 다름 아닌 순수한 진정성으로 다가왔다.
오케스트라의 위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의 응축된 긴장감이 끝난 후에는,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Symphonie n°3 'avec orgue')의 장엄함이 이어졌다. 압도적인 음향 스케일의 본 교향곡은 서정성과 엄숙함이 어우러진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관현악 기본 편성에 포함되지 않는 두 건반악기, 즉 오르간과 피아노가 포함된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1886년에 작곡되어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된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반세기 앞서 개척한 혁신적 흐름과 리스트의 순환 구조(cyclic form)와 주제 전개 기법을 따르는 19세기 프랑스 대규모 교향곡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메켈레는 Poco adagio에서 깊은 내면의 분위기를 전개했다. 유연하면서도 집중력이 느껴지던 그의 지휘봉은 명상적인 악장에서 자연스럽게 종교적 울림을 끌어냈다. 이어지는 Allegro moderato는 청중의 귀에 익숙한 주제가 극적인 색채를 띠며 전개되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대표 주제는 변주로 전개되었고, 이는 프란츠 리스트의 방식을 떠올렸다. 일부 구간에서 느껴지던 동화적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작곡가가 같은 시기에 쓴 '동물의 사육제'의 '수족관(Aquarium)'을 떠올렸다. 메켈레의 지휘봉은 유려한 현악 파트 위에 동화적 나레이션을 섬세하게 풀어 나갔다.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은, 기본 관현악 편성에 오르간과 피아노(4 핸즈)를 추가함으로써 전체적 사운드는 풍성함을 더하지만, 결코 과시적인 효과를 노리지는 않는다.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다소곳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필하모니의 오르간은 Maestoso 피날레에서 뤼실 돌라(Lucile Dollat)의 연주로 장엄하게 등장하며 좌중을 압도했다. 메켈레는 바로 이 순간 자신의 음악적 권위를 자신감 있게 드러내며 폭넓은 제스처와 전심전력의 몰입으로 오케스트라를 황홀경의 절정으로 이끌었다.
압도적이고 찬란한 황홀감
강렬한 음향에 말 그대로 빨려 들어간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음악 안으로 흡수되었다가, 이내 의식과도 같은 연주에 뜨거운 기립박수로 응답했다. 평소 조용히 뒷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필하모니의 오르간이, 이토록 눈부시게 청각과 시선을 동시에 사로잡은 순간은 거의 드물었다.
이날 저녁 필하모니 드 파리는 단순한 콘서트홀이 아닌, 스윙과 긴장감, 서정성이 한데 어우러진 역동적인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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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박마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