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 웃다 마음에 온기가 생기는 튀르키예 그룹투어

6 days ago 5

한 마디도 쉬지 않는 세 모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싸우는 한 커플. 웬만한 한국인보다 말이 더 많은 터키인 가이드. 남자는 이 소란스러운 투어에 끼게 된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이지만 투어 내내 그는 더더욱 말이 없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투어 멤버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중 한 명과 그에게는 숨겨진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그 과거의 매듭을 풀 때가 된 것 같다.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귤레귤레>는 코미디 영화의 ‘최고봉,’ 고봉수(놀랍게도 그의 본명이다)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다. 고봉수 감독은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2017)와 그 다음 작품 <튼튼이의 모험>(2018)으로 전주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해서 이후로 거의 매년 (<빚가리>(2024)의 개봉 전까지) 평균 두 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해 개봉하는 기적에 가까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다작’은 이 영화들이 모두 저예산 독립영화 프로젝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분명 그는 다작을 추구하는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는 얕지 않다. 고봉수의 코미디에는 웃음과 현실이 맞물려 공존한다. <다영씨>(2018)가 그리는 택배 기사의 일상이 그랬고, <빚가리>에서 빚에 허덕이는 아버지가 그랬다. 고봉수의 캐릭터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삶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낮은 삶에서 생존하기 위해 유머러스한 성격을 장착하고 버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그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도 각박하기에 이들의 성향은 상대적으로 그것보다는 밝게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봉수의 소시민들은 그들의 거대한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그 안의 어딘가에 좁은 틈에서 그들은 친구와 우정을 쌓기도 하고(<델타 보이즈>), 천생의 인연을 찾기도(<다영씨>) 한다.

[위] 영화 <다영씨> [아래] 영화 <델타 보이즈>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위] 영화 <다영씨> [아래] 영화 <델타 보이즈>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귤레귤레>는 여러모로 고봉수의 소시민 유니버스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색다른 작품이다. 예컨대 이번 영화는 독립영화 중에서도 지극히 (더)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왔던 그의 이전 작들과는 달리 무려 튀르키예에서 촬영한 해외 올로케이션 작품이다. 동시에 코미디보다는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가 더 두드러지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대식’(이희준)이 직장 상사와 떠난 튀르키예 출장에서 며칠을 더 머물게 되며 시작된다. 계약을 성공적으로 끝나 신이 난 상사는 내키지 않는 대식을 구슬려서 그룹투어를 신청한다. 이들이 묵는 호텔에는 같은 투어에 참여하는 한국인들이 함께 투숙 중이다. 투어 멤버들은 여행 유튜버인 중년의 여성과 그녀의 두 딸, 그리고 한 커플로 구성돼 있다. 이혼했지만 재결합을 위해 여행을 온 이 커플의 여자, ‘정화’(서예화)는 사실 대식과 대학 시절 가까운 친구였지만 정화가 대식의 고백을 대차게 거절하면서 현재는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조합으로만 봐도 이들의 투어가 순조로울 리 없다. 상사는 투어 맴버들과 술 마실 궁리만 하고, 세 모녀는 유튜브 방송으로 늘 떠들썩하다. 무엇보다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서로를 물고 뜯는 정화와 전 남편은 이 만족스럽지 못한 투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남편은 정화를 두고 떠나버리고, 마침내 정화와 대식은 그간의 이야기를 할 만한 틈이 생긴다. 그리고 이 작은 틈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기에 충분한 것이다.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앞서 언급했듯 <귤레귤레>는 고봉수의 이전 작들과 다른 스타일과 면모를 보이는 작품이다. 고봉수 감독의 가장 큰 특징, 즉 만담에 가까운 말싸움이 만들어 내는 코미디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비호감’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유머는 여전히 영화의 동력이지만 이번 작품은 코미디적인 요소보다 주인공 캐릭터, 즉 대식의 넋두리에 더 무게를 둔다. 예컨대 그는 고백 한번 거절당했다가 그 트라우마로 여태껏 연애도 못 하는 소심한 청년이자, 병든 아버지의 병원비를 위해 선수 생활을 포기했던 속 깊은 아들이다. 대식의 선택들이 결국엔 비겁한 변명이라고 말했던 정화 역시 결국엔 그의 여리고 깊은 마음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유치원 현장학습만큼이나 소란스러웠던 이들의 그룹 투어는 상처받고 지친 이들의 치유 여행이 된다. 혹은 시작이거나.

고봉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매우 웃기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에 온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한바탕 웃고 나면 휘발하는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와 고봉수 감독의 작품을 절대적으로 차별화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의 ‘튼튼이’들은 오늘도 부족한 현실을, 그리고 소소한 비극을 유머로 버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비루한 일상과 동행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귤레귤레>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귤레귤레>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 <귤레귤레>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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