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스포츠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장에서 위험한 사건·사고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체육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특히 체육 활동을 진심으로 즐겨야 할 청소년들에게 가슴 아픈 일들이 반복돼 충격이 더 크다.
지난 3일 제주도에서 열린 복싱 대회에 참가한 한 중학생 선수가 의식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해당 학생은 사건이 일어난 지 20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정황상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재’라는 지적이 높다,
지난 6월에는 경북 상주의 한 중학교에서 씨름부 지도자가 중학생 선수의 머리를 삽으로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두 달가량 은폐됐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학생을 아버지가 발견해 구조하면서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7월에는 고교 레슬링 지도자가 전국 대회 현장에서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해 논란을 빚었다. 지도자는 경기 직후 소속 선수의 머리를 때린 뒤 목덜미를 잡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 목과 가슴을 가격했다. 이 모습은 인터넷 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공개됐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은 우리 스포츠계에 폭력 문화와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들은 끊이지 않고 반복됐다. 대책 마련을 위해 온갖 호들갑을 떨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스포츠는 청소년들이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단련시키는 도구다. 동시에 협동과 공정함을 배우는 무대다. 그래서 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체육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폭력이 일상화돼 있다. 어린 선수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제도와 규율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폭력 문제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폭력을 행사한 지도자에 대한 엄정한 징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현장의 개선은 요원하다. 더불어 지도자에 대해 엄격한 자격을 요구해야 한다. 축구 등 일부 종목에선 지도자 자격 획득이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 종목에선 그런 자격 제도가 아예 없거나 유명무실하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명시된 ‘스포츠지도사’ 등 자격증도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안전 불감증’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고가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반복된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 잊히면 그만이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사고는 반복되고, 희생은 줄지 않는다.
안전 문제 역시 엄격한 제도와 처벌이 절실하다. 단순히 대회 주최 측이나 해당 종목 협회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대회나 스포츠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엄격한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솜방망이 처벌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 주 체육위원회처럼 스포츠 현장 관리를 총괄할 전담 조직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김대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체육계에서 벌어지는 폭력, 성폭력 등에 대해 “이중, 삼중으로 일벌백계할 장치가 돼 있다”며 척결 의지를 내비쳤다. 장·차관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이 같은 말이 나오지만, 불행한 사건은 늘 반복된다. 이번에야말로 체육계가 뼈아픈 사슬을 끊고 건강한 문화와 환경이 정착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