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외모가 마이너스가 된 '데드풀'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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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출신의 배우로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여배우는 요즘엔 아무래도 아나 데 아르마스일 것이다. 쿠바 출신인 그녀가 발군의 액션 연기를 선보일, 그래서 여자 존 윅이 되는, 그럼으로써 이제 할리우드 생활에 지친 것처럼 보이는 키아누 리브스의 대를 잇게 될 영화 <발레리나>도 곧 개봉될 예정이다. 아르마스는 톱스타 자리를 굳힐 것이고 중남미 대륙의 미인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남미의 미모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아나 데 아르마스 이전, 이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솔직히 외모만 따지고 보면 아나 데 아르마스가 한 수 아래 접어야 한다. 바로 브라질 출신의 여배우 모레나 바카린이다. 원래 이름은 Morena Silva de Vaz Setta Baccarin, 모레나 시우바 지바스 세타 바카링이다.

<고담> 스틸컷 / 사진. ⓒIMDb

<고담> 스틸컷 / 사진. ⓒIMDb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모레나 누구?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만 안다. 어떤 사람은 <데드풀>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리메이크 TV 시리즈 <V> 때문이다. 모레나 바카린은 특A급은 아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만큼 작품 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반짝스타는 아니다. 조금 더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남자 주인공 옆에 서 있는 ‘그루피’로서 존재감을 유지할 것이다. 더불어 빛나는 조연으로 함께 할 것이다. 다 떠나서 모레나 바카린은 실로 아름다운 여배우이다. 중남미의 미인은 브라질에 있음을 증명하며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모레나 바카린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가 생각이 난다. 얘기를 삼천포로 좀 나갔다 오자. <거미 여인의 키스>는 감독 헥토르 바벤코가 만든 전설의 영화였고 1985년 영화로, 국내에는 군부독재 치하였던 데다 비슷한 설정의 얘기라 극장 개봉은 엄두에 내지 못했던 작품이다. 모두들 비디오로 몰래 봤다. 그나마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아주 이따금, 잊을만하면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무대로 다시 만나게 되곤 하는 작품이다. 이른바 식자(識者)층의 작품이다.

바벤코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브라질 영화계에서 활동했다. 그의 영화에는 동성애자 게이들이 많이 등장하며 배경도 브라질을 넘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쿠바 아바나일 경우가 많다. <거미여인의 키스>도 아르헨티나 감옥 안이 배경이며 반도덕 범죄(호모 섹슈얼 행위)로 기소된 게이 모리나(윌리엄 허트)와 정치범인 발렌틴(라울 훌리아) 간의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퀴어 영화이다. 모리나는 고문 후유증으로 끙끙 앓고 있는 발렌틴의 통증을 잊게 해 주기 위해 수많은 영화 얘기, 특히 나치 장교와 사랑에 빠진 레지스탕스 여성의 얘기를 해준다. 영화는 영화 속의 영화를 펼쳐낸다. 이때 나오는 브라질 여배우가 소냐 브라가이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브라질이란 나라의 영화가 갖는 아우라가 어떤지를 거의 최초 격으로 알려 준 작품인 데다 브라질 여배우의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의 발렌틴과 모리나 / 사진. ⓒIMDb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의 발렌틴과 모리나 / 사진. ⓒIMDb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의 소냐 브라가 / 사진. ⓒIMDb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의 소냐 브라가 / 사진. ⓒIMDb

소냐 브라가의 조카 앨리스 브라가는 이모보다 훨씬 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배우가 됐다. <엘리시움>(2013)과 <더 수어 사이드 스쿼드>(2021)로 유명하다. 그녀가 나온 시즌 드라마 <남부의 여왕>은 넷플릭스에 시즌5까지 올라가 있다. 이 드라마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조직 여자 보스의 이야기이며 브라질 여배우, 브라질 감독, 브라질에서 영화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이렇게 중남미 통합 시장을 겨냥해 일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어쨌든 소냐 브라가 얘기를 왜 했겠는가. 만약 <거미 여인이 키스>가 리메이크된다면 소냐 브라가 역은 마땅히 모레나 바카린이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레나 바카린으로 돌아오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점은 얼굴이 그야말로 조각에 가깝다는 것이고 몸매 또한 거의 신이 빚어낸 솜씨라는 점이다. 너무 예쁘다. 키는 171cm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주연급으로 쓰기에는 연기력이 애매했고 그렇다고 이런 배우를 계속해서 단역으로 쓰기에는 맞는 역이 별로 없었던 듯싶다. 이런 여배우는 대개 이런 경우가 많다. 외모가 빛나는 여배우는 보통 ‘좀 애매해서’라는 반응을 얻기 십상이다. 모레나 바카린이 딱 그랬다. 외모가 출셋길을 오히려 막았다. 모레나 바카린은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2016년 <데드풀>로 주목을 끌기까지 영화에서는 15년이라는 비교적 긴 무명 생활을 보내야 했다.

영화 <데드풀1>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데드풀1>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데드풀1>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데드풀1> 스틸컷 / 사진. ⓒIMDb

2015년 맬리사 맥카시, 제이슨 스태이덤 주연의 코미디 영화 <스파이>에서 단역으로 나오면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디서 이렇게 절세 미모의 여배우가 나타난 것인가, 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단박에 <데드풀>에 라이언 레이놀즈의 꿈의 여인으로 캐스팅됐고 다시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다. <데드풀>에서 모레나 바카린이 스타가 됐다는 것은 <데드풀2>에서 그녀가 맡은 바넷사 역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할리우드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배우들의 출연 분량과 분량의 러닝 타임을 늘려준다. 여배우만큼 자본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람들도 없다. 냉혹하다.

여기서 <데드풀>과 <데드풀2>의 상세 버전을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 스토리 라인이 중요한 영화도 아니다. 모레나 바카린이 드라마다운 드라마에 나온 것은 2020년 영화 <그린랜드>에서였다. 지구에 유성 무더기가 떨어지고 멸망하기 일보 직전에 극히 소수의 사람이 그린랜드 생존 벙커로 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모레나 바카린은 앨리슨 역을 맡았다. 남편인 존(제라르 버틀러)과 사이가 틀어진 아내 역이다. 둘은 네이선이라는 아들을 키운다. 이 셋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앨리슨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려 했던 남편 존을 다시 받아들인다.

너무 예쁜 외모가 마이너스가 된 '데드풀'의 그녀

영화 <그린랜드>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그린랜드>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해가 안 가는 설정은, 존이 바람을 피우기에는 아내인 엘리슨이 너무 예쁘다는 것인...데...이런 이야기는 여성주의에 반하는 이야기임으로 해서는 안 될 것이며 또 남자나 여자의 바람이라는 게 끌림의 문제이지 외모의 문제라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이니, 그 입 닥치라는 소리를 듣게 될 터이다. 아무튼 <그린랜드>는 그저 그런 영화였으며 당대 스타급이었던 제라르 버틀러는 할리우드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고 모레나 바카라는 계단을 오르는 중임을 여실히 드러낸 영화였다.

모레나 바카라는 경력을 TV 쪽에서 더 빨리 얻었는데 1985년 충격의 외계인 드라마 <V>의 2009년~2011년 리메이크 판 드라마에서 주인공 빌런인 다이애나 역을 맡았다. 충격의 드라마라고 한 것은 1985년 당시 외계인 총사령관 다이애나가 살아 있는 쥐를 통째로 입에 넣는 장면 때문이었다. 다이애나를 포함해 이들 외계인은 ‘랩틸리언’이라 불리는 파충류이다. 1985년 판에서의 다이애나 역은 제인 배들러가 맡았으며 리메이크 시즌 드라마에서는 총사령관 다이애나 역을 바로 모레나 바카리가 맡은 것이다. 과거의 다이애나 제인 배들러는 현재의 다이애나 모레나 바카리의 엄마 역할로 나온다. 오래돼 촌티가 덕지덕지 나는 설정이었던 탓에 모레나 바카리의 리메이크 드라마는 처참한 혹평 속에 시즌2로 끝났다. 그러나 작품은 죽어도 배우는 남는 법이다. 모레나 바카리는 다이애나 역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드라마 <V> 속 모레나 바카리 / 사진. ⓒIMDb

드라마 <V> 속 모레나 바카리 / 사진. ⓒIMDb

이후 그녀는 TV 시리즈에 집중했는데 <멘탈리스트>와 <홈랜드> <굿 와이프>가 선구안이 좋았던 작품이다. <멘탈리스트>에서는 팜므 파탈, <홈 랜드>에서는 오랜 실종 끝에 생존 귀환한 남편이 무슬림 테러리스트로 변한 것을 알게 되는 가녀린 아내 역으로 나온다. 보기 좋았다. <굿 와이프>에서는 모레나 바카리를 찾을 수가 없다. 숨은그림찾기를 해야 한다. 단역이었다. 차라리 HBO 시즌 드라마 <고담>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검시관으로 나오는 모레나 바카리를 찾는 게 더 쉽다. 우리나라에는 TVING에서 나온다. 매력있다.

<홈랜드> 스틸컷 / 사진. ⓒIMDb

<홈랜드> 스틸컷 / 사진. ⓒIMDb

<고담> 스틸컷 / 사진. ⓒIMDb

<고담> 스틸컷 / 사진. ⓒIMDb

모레나 바카리는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고혹적으로 됐다. 1979년생이다. 현재 46세. 여배우 열전은 아주아주 톱스타만 다루지는 않는다. 아주아주 젊은 여배우만 다루지도 않는다. 아주아주 유명한 여배우만을 다루지도 않는다. 모레나 바카리는 우리가 발견해 나갈 배우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브라질에도 여배우 열전의 여배우가 있다. 모레나 바카리가 그렇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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