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재명도, 국회의장도 간다는 그 마을엔 어떤 비밀이

2 days ago 1

◆ 2025 대선 레이스 ◆

경기 여주 구양리 르포
마을 공용 태양광발전으로
매달 1000만원↑ 순수익
농촌기본소득 롤모델 될까

“시설 설비를 위해 받은 융자 원리금을 공제하고도 매달 평균 순이익이 1000만원 정도 나옵니다.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는 아직 1장 팔지도 않았어요.”(전주영 구양리 이장)

70여 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 전국 국회의원들은 물론 대통령 선거 후보까지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에 위치한 구양리(九陽里)다.

마을은 전국 최초로 마을공동체 태양광발전소를 지어 운영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수익을 마을 공용 셔틀버스·무료식당 운영 등 주민 복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현직 국회의원 12명이 동시에 방문한 데 이어 11월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방문하는 등 여의도의 주목을 받고 있다.

5일에는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방문한다. 이 후보는 구양리 모델을 통해 경기지사 시절 시도했던 ‘농촌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장려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후보측은 ‘원헌드레드(100개) 구양리 운동’을 말하기도 했다. 구양리 같은 마을 100개를 전국에 만들겠다는 포부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거리, 인구 150여명 남짓 작은 산골 마을은 어떻게 정치권의 주목을 받게됐을까. 매일경제가 4일 직접 구양리를 다녀왔다.

구양리 마을 표지석. 표지석 사이로 마을회관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집열판이 보인다. [사진=전형민 기자]

구양리 마을 표지석. 표지석 사이로 마을회관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집열판이 보인다. [사진=전형민 기자]

공동체로 운영해 공동복지에 사용

농촌의 태양광발전은 오래 전부터 노는 농지를 활용할 방안으로 언급됐다. 하지만 주민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마을 주민의 생활 터전의 일부를 희생하지만, 그 수익은 장기적으로 투자한 기업에게 돌아가는 구조 때문에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구양리는 이 구조를 개선했다. 소수의 땅주인이나 외부사업자가 주도하는 사업 대신, 마을 공유지에 주민이 공동으로 태양광 발전사업을 추진해 그 수익을 마을복지에만 사용하는 방식이다.

마을 안내를 맡은 최재관 전 대통령비서실 농어업비서관은 “외국 사례를 연구해보니, 독일·덴마크도 태양광발전을 싫어하지만 그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특징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도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모델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 전 비서관은 현재 민주당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표지. [사진=전형민 기자]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표지. [사진=전형민 기자]

마을 발전소 설치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추진하는 ‘햇빛두레’ 지원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 마을 공동체가 주도해 마을 내 공용지에 상업용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고 그 이익을 마을에 공유하는 경우, 1㎿(메가와트)에 한해 여러 개 입지를 하나의 발전사업허가로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사업에 선정되면 REC 우대 가중치(0.2)를 부여하고 태양광설비를 위한 융자를 정책자금을 통해 장기·저리로 지원한다. 최 위원장은 “구양리에서 이 사업을 준비하고 나서 산업부에서 사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해줬고, 공모를 통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면서 “융자 덕분에 주민들은 자비 부담 없이 복지를 누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구양리 조감도. 1~4호 발전소는 마을 공용 건축물 지붕에, 5호와 6호는 농지를 전용해 설치했다. [그림=구양리 제공]

구양리 조감도. 1~4호 발전소는 마을 공용 건축물 지붕에, 5호와 6호는 농지를 전용해 설치했다. [그림=구양리 제공]

지난달 수익 3027만원…매달 평균 1000만원

현재 구양리에서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는 △작은말 창고(1호) △큰말 창고(2호) △체육 부지(3호) △풋살구장 주차장(4호) △농지1(5호) △농지2(6호) 등 총 6개소, 997.92㎾(킬로와트)다.

농지를 전용(轉用)한 5호와 6호를 제외한 1~4호는 모두 마을공용자산 위에 설치한 태양광발전소다. 도시와 달리 농촌에는 종종 마을공용으로 사용되는 자산이 있는데, 이를 활용했고, 주민들의 동의를 받기도 그만큼 쉬웠다. 주민들은 사유 재산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간접적인 혜택을 본 셈이다.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1호. 마을 공용 농기계 창고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올렸다. [사진=전형민 기자]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1호. 마을 공용 농기계 창고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올렸다. [사진=전형민 기자]

마을 공용재산은 마을 단위 각종 보조금을 활용해 오랜 기간 조성된 것이라고 했다. 보조금을 소비성으로 가구별로 나눠갖기보다, 마을을 위한 공용 물품이나 창고 등 구비에 사용한 덕분에 그 자산이 남은 경우다.

전 이장은 “구양리는 오래 전부터 주어진 한강수계관리기금(수계기금)과 인근 공장(SK하이닉스)의 지원금을 공용창고와 체육 부지 등을 구매하는 데에 사용했다”고 소개했다.

6개소에서 발생되는 이익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일까. 전 이장은 선뜻 기자에게 올해 발전소 수입 내역을 공개했다. 지난달(4월) 비가 많이 왔지만, 태양광발전 수익은 SMP(전기 도매 가격)과 REC를 합쳐서 3027만1737원이었다. 눈이 많이 와서 가장 발전 수익이 적었던 1월에도 1489만8688원의 수익이 발생했다.

전주영 이장이 공개한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 수익. [자료=구양리 제공]

전주영 이장이 공개한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 수익. [자료=구양리 제공]

행복버스·무료급식…주민 만족감 커

태양광 발전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100% 마을 주민의 복지를 위해 쓰였다.

가장 대표적인 용처는 마을 셔틀버스인 ‘구양리 행복버스’다. 15인승 승합차를 구매해 사용하는 행복버스는 마을공동체에 고용된 전업 사무장이 도맡아 운영한다. 주민이 전화를 통해 버스를 요청하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대중교통 부재에 따른 불편이 상당수 해소된 것이다.

마을 어귀 사무실 앞 경로당 식당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도 마찬가지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점심 1끼를 제공하는데,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음식은 매일 마을 부녀회가 만들고, 재료비 외 소정의 수고비와 식당 건물과 내부 설비 역시 태양광발전 수익으로 충당했다.

실제로 마을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별 것 아닌 흔한 복지 사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을이 직접 번 돈으로 함께 나뭐 먹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옛날 상부상조 같은 어울림이 사라지던 마을에 이웃과 연결되고 함께 한다는 유대감이 생겨서 좋다”고 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자파 등 안정성 우려에 대해서도 “실제로 시연한 것을 보니 휴대폰 수준도 안 되더라”며 손사레를 쳤다.

구양리 마을 식당의 모습. 무료 급식을 운영하지 않는 일요일에 찾아갔기 때문에 이날 급식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사진=전형민 기자]

구양리 마을 식당의 모습. 무료 급식을 운영하지 않는 일요일에 찾아갔기 때문에 이날 급식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사진=전형민 기자]

“마을 공용재산 없어도 가능하게 확대”

공용자산이 없는 마을도 햇빛두레 발전소를 운용할 수 있을까. 최 위원장은 “한국농어촌공사의 비축농지를 활용하면 공용재산이 없는 마을도 충분히 햇빛두레 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농촌 소멸로 넘쳐나는 비축농지를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농어촌공사가 비축농지의 수익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일정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마을 비축농지에 태양광설비를 설치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마을공동체와 나누는 방식으로 농어촌공사와 마을공동체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보조금으로 농지를 사들여 전용한 구양리 5호와 6호 발전소 모습. [사진=전형민 기자]

마을 보조금으로 농지를 사들여 전용한 구양리 5호와 6호 발전소 모습. [사진=전형민 기자]

실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비축농지는 재난에 가깝다. 농지 가격은 2021년 평당 평균 27만원에서 2년 만인 2023년에는 20만원으로 하락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농민평균연령은 69세로 현재까지의 비축농지보다 앞으로 나올 양이 훨씬 많다는 게 기정사실화된 미래다.

최 위원장은 태양광설비를 위한 비용은 각 지역농협의 수익권담보대출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 단가가 폭락할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마을 공동체 단위로 한전과 계약하게 되기 때문에 10년 혹은 20년짜리 장기 계약을 통해 어느정도 단가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농어총공사의 비축농지는 전국 1만5000㏊(헥타르)에 달한다”며 “여기에 영농형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할 경우 구양리의 7500배 규모인 7.5GW(기가와트) 용량의 태양광발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4호. 마을 풋살장 옆 공용 주차장에 지붕으로 태양광 집열판을 올렸다. 풋살장은 최근 태양광발전 수익을 활용해 주민 모두가 활용 가능한 그라운드 골프장으로 개조하고 있다. [사진=전형민 기자]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4호. 마을 풋살장 옆 공용 주차장에 지붕으로 태양광 집열판을 올렸다. 풋살장은 최근 태양광발전 수익을 활용해 주민 모두가 활용 가능한 그라운드 골프장으로 개조하고 있다. [사진=전형민 기자]

구양리 햇빛두레는 아직 진행중

구양리 햇빛두레는 준공 후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전 이장과 최 위원장이 꿈꾸는 햇빛두레는 아직 진행중이다. 현재 1㎿ 수준인 마을 공동 발전량을 4~5㎿로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매년 지출되는 가구당 평균 250만원 수준의 냉난방비를 발전 수익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농가에 큰 부담이 되는 고정비를 발전 수익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셈으로 사실상 ‘에너지자립 마을’이 되는 셈이다.

최 위원장은 이를 넘어 마을 주민이 마을에서 태양광발전으로 생산한 수익으로 연금을 받는 햇빛연금마을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영농형 태양광을 전격 도입해 일반농지에서 작물 재배와 태양광발전을 동시에 진행하고, 이렇게 극대화된 소득으로 귀농귀촌을 지원해 소멸하지 않는 농촌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전주영 이장(오른쪽)과 최재관 위원장(가운데)이 구양리 행복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전형민 기자]

전주영 이장(오른쪽)과 최재관 위원장(가운데)이 구양리 행복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전형민 기자]

최 위원장은 “이를 위해서는 ‘영농형 태양광발전사업 지원법’의 국회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비슷한 내용의 해당 법안이 상이한 이름으로 4건 발의돼있다. 여야가 모두 발의할 정도로 중요성이 인정된 만큼 적절한 시기에 법안의 처리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전 이장은 태양광발전을 통해 얻은 수익 배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마을이 돈을 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잘 쓰는 게 더 중요하다”며 “주민이 행복하도록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마을 임원들이 매달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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