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테크 겸직'에 변회, 엄격한 잣대…법원은 "위법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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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변회, 리걸테크 업체 겸직 불허 처분
해당 변호사, 겸직 허용해달라며 소 제기
法 "법률 문서 자동 작성, 위법 아냐" 결론
변호사법 109조 해당 여부 판단기준 제시

'리걸테크 겸직'에 변회, 엄격한 잣대…법원은 "위법 아냐"

변호사가 고소장 등 법률 문서의 자동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걸테크 회사 직원으로 겸직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변호사 A씨가 서울지방변호사회를 상대로 낸 겸직 불허 취소 청구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2021년 9월 29일 서울변회에 한 리걸테크 회사 B의 사원으로 겸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이 회사는 내용증명, 지급명령, 각종 계약서, 고소장, 위임장, 합의서, 통지서 등 법률 문서를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원하는 문서의 종류와 필요한 내용 일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서면이 작성되는 시스템이다.

서울변회는 같은 해 11월 8일 A씨의 겸직을 불허하는 처분을 내렸다. 해당 B회사의 서비스가 “일정 정보를 입력하면 알고리즘이 나머지 내용을 작성해 최종 문서를 완성해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법률서면 양식 판매 서비스와 같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 등이 아님이 명백해 비(非)변호사가 법률 사무를 취급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변호사법 34조, 109조 1호에 위반된다는 취지였다.

A씨는 B회사의 서비스가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 문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울변회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B회사가 문서 자동 작성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내세웠다. 변호사법 109조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조건으로 사건에 대한 법률 문서를 작성하거나 그 밖의 법률 사무를 취급하는 것”을 위법하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B회사의 문서 자동 작성 서비스가 변호사법 109조에 규정된 ‘사건에 대한 법률 문서나 그 밖의 법률 사무 취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률 문서의 ‘작성’이나 법률 사무 ‘취급’에 해당하려면 적어도 구체적·개별적 사안을 대상으로 하거나 적어도 그와 연관돼야 한다”며 “어떤 플랫폼이 계약서 등 법률 관련 문서의 서식과 같이 표준화된 문서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면 구체적·개별적 사안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B회사의 서비스가 “프로그래밍을 통해 실무에 자주 쓰이는 문서 유형의 사례를 축적한 뒤 그에 따라 표준화된 양식을 마련”하는 방식이며, “프로그래밍이 개별 사례를 대상으로 해 구현된 것도 아니다”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사전에 마련된 프로그램에 이용자가 공란을 채우면 답변 내용이 문서에 수정 없이 그대로 반영되는데, 이는 법률 문서 서식집에 수록된 문서 중 하나를 이용자가 선택해 공란을 채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법률서비스가 개별 사건과 연관되는지를 가늠할 기준으로 “이용자가 입력한 정보를 해당 시스템이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지, 혹은 이런 과정을 예정하고 있는지 여부”로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법률서비스에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경우라면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입력값과 연관된 법률 문서를 AI 기술이 직접 선택, 작성한다는 점에서 “문서 양식의 단순한 디지털화를 넘어선 것”이라는 논리다.

재판부는 같은 기준을 적용해 B회사가 제공하는 변호사 검토·직인 서비스의 경우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봤다. 서비스 자체가 유료인 데다 변호사법 109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알선’(어떤 사람과 그 상대방 사이에 서서 법률적 또는 사실적 관계의 성립·유지·변경을 쉽게 하기 위하여 중개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애초 서울변회가 검토·직인 서비스는 처분 사유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분 자체를 적법하게 만들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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